황진환 기자#2016년 9월의 경주, A군은 고작 7살이었다. 그해 교회에서 A군의 범죄가 시작됐다. A군은 어느 일요일, 같이 교회를 다니던 B양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데려갔다. B양을 협박해 옷을 벗기고 몸을 만졌다. 범행은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매주 수요일 혹은 일요일이면 A군은 B양을 교회 한구석으로 데리고 가 B양의 입에 자신의 성기를 넣는 등 추행을 일삼았다. 심지어 강간까지 했다.
B양은 이후 몇 년 간 환청이나 불안장애 등 정신질환에 시달려야 했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어 휴학까지 해야 했다. B양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A군은 과연 죗값을 치렀을까?
지난 1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고층에서 돌을 던져 지나가던 70대 남성을 숨지게 한 8살 초등학생 관련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학생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경찰이 해당 사건에 대해 입건 전 조사(내사) 종결을 했기 때문이다.
'범법소년에게도 형사 처벌을 해야 한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 등의 여론이 우세한 가운데, 10세 미만의 아동은 정말 죗값을 치르지 않는 건지 판례를 통해 살펴본다.
형법도 소년법도 피해가는 무적의 '범법소년'
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10세 미만의 '범법소년', 10세 이상~14세 미만의 '촉법소년'과 14세 이상~19세 미만의 '범죄소년'이다.
이중 '범죄소년'의 경우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다만, 형사 재판을 받는 대신 법원 소년부로 송치돼 소년법에 의거한 '보호처분'(1호 보호자 감호위탁~10호 장기 소년원 송치)을 받을 수도 있다. 보호처분을 받을 경우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
'촉법소년'은 형사 미성년자(14세 미만)이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소년법상 보호처분만을 받는다.
하지만 10세 미만의 '범법소년'은 보호처분도, 형사처벌도 받지 않는다. 범법소년이 죗값을 직접 치르는 경우는 없다는 뜻이다. 어떠한 범죄를 저지르든 입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찰 또한 '범법소년 발생 현황'과 관련한 통계조차 별도로 관리하지 않고 있다.
'범법소년' 대신 죗값 치르는 부모
형법도, 소년법도 피해가는 범법소년이지만, 민법은 범법소년의 부모가 대신 죗값을 치르게 하고 있다. 민법 제753조와 제755조 1항에 따르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에 그 행위의 책임을 변식할 지능이 없는' 미성년자는 배상의 책임이 없다.
대신, 미성년자가 제3자에게 손해를 가하지 않도록 감독해야 할 법정의무가 있는 자(감독의무자)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즉 범법소년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이들이 '감독의무자'인 부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감독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인정될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위 사례에 나온 B양의 부모 또한 A군을 상대로 소를 제기해 결국 손해배상을 받았다. 재판부는 A군의 어머니로 하여금 B양과 B양의 부모에게 각각 7천만 원과 8천만 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2022년 7월 유치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3살 여자아이를 인적이 드문 논밭으로 데려가 폭행하고 추행한 10살 미만의 초등학생 2명의 부모 또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부모가) 그 아이들의 보호감독자로서의 주의의무를 해태했다"면서 피해를 입은 아이에게 5천만 원, 부모에게 각각 1500만 원을 함께 배상하라고 했다.
다만 부모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범법소년의 부모라 하더라도 이혼 등으로 친권자, 양육자가 아닐 경우 '감독의무'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2020년 7월 인천 강화군 한 유치원 놀이방에서 5살 아이에게 '바지 내려 봐라', '뚝배기를 날려버린다'는 등의 말을 하며 폭력을 가한 6살 C군의 아버지에 대해 재판부는 '감독 의무'가 없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혼을 해 C군과 따로 살던 아버지는 C군의 어머니와 달리 C군에 대해 실제로 일상적인 지도와 조언을 해오지도 않았고, 이러한 일이 벌어질지 구체적으로 예견할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C군의 주양육자인 어머니에 대해서는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리 죗값' 치르는 부모·교사…어디까지 책임져야하나
하지만 아무리 부모가 10세 미만 아동의 '감독의무자'라 하더라도, 모든 범죄 상황을 예견하거나 방지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과연 부모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아이를 어느 수준으로 보호하고 감독해야 비로소 '감독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은 걸로 볼 수 있냐는 것이다.
실제로 다수의 사례에서 범법소년의 부모들은 감독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010년 11월 서울 용산구의 한 야구운동장에서 학부모 참관 아래 학생들이 야구 연습을 하던 중, D군이 실수로 E군을 야구방망이로 때려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D군의 부모는 '사고 당시 다른 장소로 이동해 스키캠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며 자신들에게 감독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대신 당시 경기를 주재하던 야구코치들에게 감독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친권자의 보호감독의무가 '미성년자의 생활 전반'에 미친다며, 비록 D군의 부모가 사고 당시 그곳에 없었다 해도 여전히 감독의무가 존재한다고 봤다.
보육·교육시설에서 범법소년의 범죄가 발생할 경우, 교사에게도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한다.(민법 제755조 제2항). 다만 부모에 비해서는 교사의 감독의무의 범위는 제한된다. 부모의 경우 '미성년자의 생활 전반'에 대해 감독의무가 있는 반면, 교사 등의 경우 '교육시설에서의 교육활동 및 이와 밀접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에 한해 감독의무를 지닌다.
2017년 경북 안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5살 F군이 여자아이 2명을 일과시간 중 화장실에서 성추행하자, 법원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화장실 이용'이 '교육활동과 밀접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생활관계'에 해당한다고 보고, 그에 대한 감독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전문가 "범법소년 피해자 구제 필요"
다만 전문가들은 10세 미만의 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지 않을뿐더러, 저지른다 해도 손해배상 소송 제기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배상을 받는 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법무법인 대한중앙 조기현 변호사는 "피해자가 큰 돈을 들여 소송을 해야 하고, 승소를 하더라도 강제집행할 재산이 충분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배상을 받기가 어렵다"면서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에는 형사소송에서 배상명령을 신청하거나 가해자로부터 합의금을 받아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않고도 피해를 회복하는 경우도 있는데, 범법소년 사건에서는 이러한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법률구조공단에서 범법소년 피해자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소송구조를 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 소년범에 대한 처벌 강화를 주장하지만, 그보다 실질적으로 피해를 구제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피해 회복을 위해 범법소년의 부모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정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국대 곽대경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사건마다 다 다르겠지만 (범법소년의) 성범죄에 대해 몇천만 원 정도의 손해배상액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너무 가벼운 것"이라면서 "그러다보니 일반인들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해 불만이 제기되고 (촉법소년 연령 하향 등)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