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미화원이 청소차 발판(빨간색 표시)을 밟고 이동중이다. 구로구환경분회 제공서울 구로구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던 60대 김모씨에게 지난 7월 24일은 악몽으로 남았다. 하루아침에 왼쪽 다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날 저녁 김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사고는 오후 10시 30분쯤 구로디지털단지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한 음주운전자가 좌회전을 하려고 대기 중이던 청소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음주운전 차량은 그대로 청소차 뒤편 발판에 매달려있던 김씨의 왼쪽 다리를 쳤다. 이 충격으로 김씨 왼쪽 다리뼈가 으스러져 무릎 위부터 하지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김씨의 고통은 단순히 신체적인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매일 사고 당일이 생각나 몸서리쳤다. 김씨의 보호자는 "김씨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재활 치료를 하고 있다. 계속 악몽을 꾸는 바람에 정신과 병원을 찾아 치료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구로구 청소미화원들이 "청소차량 발판을 제거하라"며 지난 4~5일 이틀간 일시 파업에 들어갔다. 현재는 현장에 복귀했지만 교섭 타결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해 조만간 연말 파업에 다시 돌입할 수 있는 상황이다.
청소미화원들은 지난 3일 오후 7시부터 5일 오후 7시까지 이틀간 파업했다. 구로구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환경미화원 전체 인원 약 150명 가운데 약 100명이 파업에 동참했다. 이들은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월급을 떼이지 않기 위해" 파업에 나섰다고 했다.
이들의 요구사항은 △수습기간중 불법적 임금삭감 △임금 인상 및 소급분 지급 △9·27노사 합의사항 이행 촉구(인원 충원 및 복리후생, 수당 미지급 등) △휴게실 개선 및 서울시 환경공무관 후생복지 증진비 지급 △차량 발판 제거 및 후속대책 마련 등이다.
특히 이들은 청소차량 발판을 제거해달라고 강조한다. 지금과 같은 노동환경에서 청소미화원들은 어쩔 수 없이 청소차 발판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노동하도록 떠밀린다는 것이다.
청소차 발판에 매달리는 것은 사고 위험성이 높다. 청소미화원이 불안정하게 매달린 상태에서 차가 급정거하거나 출발하다가 중심을 잃고 떨어질 수 있고, 충돌 사고가 발생하면 큰 인명피해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청소미화원들도 김씨의 사고가 '예견된 산업재해'라고 봤다. 실제 김씨처럼 청소차 발판에 있다가 사고를 당한 청소미화원은 수없이 많다.
지난 3월 강원도 원주에서 음주운전 차량이 청소차를 들이받아 30대 미화원이 우측 발을 절단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2020년 11월 대구에서도 청소차 발판에 타고 있던 환경미화원이 차량 충돌로 사망했다.
환경미화원이 청소차 발판(빨간색 표시)을 밟고 이동중이다. 구로구환경분회 제공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 7월까지 5년간 안전사고로 환경미화원 280명이 사망하고 3만358명이 부상을 당했다. 올해 7월까지만 해도 27명의 청소미화원이 사망했다.
다만 단순히 청소차 발판을 없애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 강도만 강해지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청소미화원들은 조수석까지 타고 내리는 것보다 발판에 매달리는 것이 노동 시간을 2~3시간 가량 줄여준다고 한다. 결국 같은 인력, 같은 업무량을 유지한 상태에서 발판만 제거하는 일은 '개악'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소차 발판 제거와 동시에 인력 충원 등 본질적인 노동환경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일반조노 구로구환경분회 김영수 분회장은 "도로교통법상에서도 차량 발판 부착은 위법이다. 적정한 인원이 투입되지 않으면서 처리해야 할 작업량이 많은 상황"이라며 "발판을 쓰지 않고 노동할 수 있도록 인원과 장비를 충원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12월 중에 교섭 일정이 잡혀있다"며 "교섭이 안된다면 또다시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로구는 이번 달 안에 청소미화원과 청소대행사 등의 교섭을 재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구로구 관계자는 "12월 중에 청소대행업체와 청소미화원들과 구청과 함께 다시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