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최근 건설업계 하도급 공사대금 미지급 증가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국내 한 대형 건설사가 수십억원에 달하는 추가공사비를 지급하지 않아 분쟁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건설업계 순위 30위권 안에 드는 H사는 중소 종합건설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공사를 진행하면서 대금을 '사후 정산'하다, 최근 갑자기 사용승인 후 추가 증빙을 요구하며 남은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연매출 200억 원의 중소 종합건설사인 A업체 관계자 등은 24일 서울 서초구 H사 사옥 앞에서 공사대금을 지급하라며 집회를 열 예정이다. 앞서 A업체는 H사와 2021년 6월 서울 용산구 업무시설 신축공사 하도급 계약을 맺고, 자재·장비 업체 등 180여개 업체와 재하도급 계약을 체결해 공사를 추진했다. 그런데 A업체는 이 과정에서 사용승인 6개월이 지나도록 H사로부터 56억여 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H사는 당초 A업체와 2021년 6월 25일부터 지난해 6월 2일까지 108억 4900만 원의 하도급 계약을 맺고 착공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19일, 공사기간을 지난해 7월 31일로 늘리는 등 총 5차례에 걸쳐 변경 계약을 맺었다. 공법 변경 등으로 공사기간이 부족하자 지난해 2월부터는 밤낮으로 인력·장비를 집중 투입하는 이른바 '돌관공사'를 진행한 바람에 추가 공사비도 덩달아 늘었기 때문이다.
A업체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H사는 하청수급사들이 우선 공사부터 진행하면 청구금액을 바탕으로 사후 계약하는 이른바 '실비 정산 방식'으로 공사비를 지급했다. 공사대금을 제때 받을 수 있겠냐고 일부 재하청수급사들이 걱정하자, H사는 A업체를 건너뛰어 직접 공사비를 지급해가며 안심시키려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업체 관계자는 "우리 회사 직원 80%가 H사 출신으로, 20여 년 동안 H사와 10여 건 넘게 건축공사 도급을 받아왔다"며 "H사에게 '돈을 주겠다'는 보장을 못 받아도 공사 중간에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H사는 5차례 변경 계약을 통해 지난해 7월 말 공사를 완료하기 위한 모든 비용을 포함해 총 66억 원 증액한 계약을 이미 체결했다는 입장이다.
H사 관계자는 "공사 초반부터 공정 관리가 원활하지 않아 결국 준공 공기가 부족한 상태가 됐다"며 "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하면 손해가 막심해 준공 기일에 맞추기 위해 돌관공사를 진행했고, 직영 공사까지 투입하면서 준공을 완료했다. 한남동 현장 관련해 (H사가) 오히려 손해를 입은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원청에서 지급한 대금이) 어떻게 분배 되는지까지는 권한 밖"이라고 말했다.
또 총 계약금액 174억 3900만여 원 중 174억 2100만여 원은 지난해 7월 말까지 지급 완료했고, 잔여금액인 1800여만 원은 A업체에 대한 가압류로 지급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H사는 도리어 A업체가 타일 및 부대 토목공사를 이행하지 않고, 하자보수 등도 하지 않았다며 관련 비용 총 3억 4800여만 원을 반환하라고 요구하며 맞서고 있는 상태다.
비단 H사의 분쟁 뿐 아니라, 최근 하도급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공정거래위원회의 지급명령을 받고도 이를 불이행한 원청 업체가 검찰에 고발된 사례도 빈발하고 있다.
공정위는 유성종합건설 법인과 대표이사를 지난 17일 검찰에 고발했다. 유성종합건설은 2020년 12월부터 2021년 7월까지 수급사업자에게 도장 공사를 위탁하면서 하도급대금 3400만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 공정위가 지난해 1월 미지급 하도급대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유성종합건설은 이 역시 이행하지 않자 고발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11월 5일에는 대명종합건설과 대명수안이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공사대금 지급 보증 의무를 회피한 사실이 공정위에 적발됐다. 공정위는 대명종합건설·대명수안에 하도급법 위반 혐의로 재발 방지 명령을 내리고 대명수안에는 과징금 3억 원을 부과했다.
이처럼 분쟁내용이 복잡하고 다툼이 큰 건설 하도급 사건의 경우 공정위에 신고하거나 민사소송에 나서기 전, 공정위 산하기관인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을 통해 조정 과정을 거칠 수 있다.
한국공정거래조정원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접수된 건설하도급 분쟁조정 신청사건 총 1425건을 분석한 결과, 대금 미지급 관련 분쟁이 989건으로 69%를 차지해 전체 분쟁유형의 3분의 2를 넘는다. 989건 중 약 41.7%인 412건이 조정 성립됐고, 이에 따라 수급사업자에게 돌아간 금액만 무려 약 1051억 8600여만 원에 달한다.
특히 최근 접수된 건수를 보면 △2021년 309건 △2022년 347건 △2023년 397건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조정이 성립된 건수는 △2021년 140건 △2022년 146건 △2023년 126건으로 비슷한 수준인데, 지급된 조정 금액은 지난해 481억 2100만원으로 △2021년 279억 9100만원 △2022년 290억 7400만원에 비해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해 경제 상황이 안 좋아 원가율이 많이 높아졌고 건설 경기를 직격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건설 업계) 현금 상황이 조금 어려웠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공정위가 지난 7일 발표한 '2023년 하도급 거래 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하도급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한 비율은 77.3%로 1년 전(86.4%)보다 감소했다. 현금성(현금·어음대체결제수단) 결제 비율 또한 89.1%로 1년 전(92.3%)보다 하락했다.
즉 원청 업체가 하도급 업체에 제때 대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영된 셈이다. 더구나 최근 태영건설 워크아웃 사태 이후 급격한 유동성 악화 상태에 직면한 건설업계에서 이처럼 공사대금을 둘러싼 분쟁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신영철 건설경제연구소 소장은 "최근 물가·자재비가 급등하는 등 투입비가 늘어나면서 영세한 하청업체가 중도 이탈하는 걸 붙잡아두기 위해 원청에서 실투입 정산 방식으로 돈을 줬을 것"이라며 "사용승인 받으면 원청 입장에서는 아쉬울 게 없기 때문에 나중에 분쟁이 생긴다. 수급사업자들이 사전에 미리 금액을 정해서 계약서를 받아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