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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직접 니코틴 맛봤다…징역 30년→'무죄' 어떻게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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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가 직접 니코틴 맛봤다…징역 30년→'무죄' 어떻게 나왔나

    CBS 정다운의 뉴스톡 530

    ■ 방송 : CBS 라디오 '정다운의 뉴스톡 530'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정다운 앵커
    ■ 패널 : 정성욱 기자


    [앵커]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넣은 음식 등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아내. 이른바 '니코틴 살인 사건'이죠.

    지난해 7월 대법원은 "피고인이 살해했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재판을 수원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열린 파기환송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는데요. 재판부의 판단 배경이 무엇인지 정성욱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앵커]
    정 기자, 우선 사건 개요부터 설명해주시죠.

    [기자]
    네. 이 사건은 아내가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넣은 음식이나 물을 먹여 숨지게 했다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 피고인이자 피해자의 아내인 A씨는 2021년 5월 26일 오전 남편인 B씨에게 미숫가루를 먹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흰 죽을 내줬습니다.

    그런데 B씨는 미숫가루를 먹고는 체한 증상을 느꼈고, 흰 죽을 먹은 뒤엔 가슴 통증을 느껴 병원 응급실을 다녀왔습니다.

    B씨는 다음날 새벽 1시에서 2시 사이에 집으로 돌아왔는데요. 집에 와선 아내 A씨가 준 찬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아침 7시 20분쯤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검찰은 A씨가 B씨에게 먹인 미숫가루와 흰 죽, 찬 물에 모두 치사량에 달하는 니코틴 원액이 들어있다고 판단하고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했습니다.

    [앵커]
    검찰은 왜 A씨가 남편을 살해했다고 판단했나요?

    [기자]
    숨진 B씨의 재산이나 사망 보험금을 노렸다고 판단했습니다. 보험금은 최대 1억 8천만원 정도로 알려졌는데요. 검찰은 당시 A씨가 내연 관계인 남성이 있었고, 이 상황 역시 범행 동기가 됐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B씨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입니다. 문제는 B씨가 이미 8년 동안 금연을 해왔다는 겁니다. 수사를 맡은 경찰이 파악한 내용이고요. 반면 A씨는 흡연자이고, 단골 전자담배 가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했고, 아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였으니 A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겁니다.

    [앵커]
    1심과 2심 법원 모두 아내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배우자가 있음에도 내연 관계를 유지하면서 남편의 재산과 보험금을 빼앗기 위해 니코틴 원액을 음식에 넣어 살해했다"고 징역 30년을 선고했습니다.

    2심도 징역 30년을 선고했는데요. 다만 사망 전날 먹인 미숫가루와 흰 죽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법의학자나 의료진 의견을 들어보니 꼭 니코틴 원액이 아니더라도 미숫가루나 흰 죽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서 체기나 가슴 통증을 느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앵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판단이 뒤집혔죠?

    [기자]
    네 지난해 7월 대법원은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심리를 더 이어가야 한다는 취지였는데요. 쉽게 말하면 '피고인이 살해했다고 볼 만큼 입증되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대법원은 2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찬 물'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우선 남편 B씨가 아내가 준 찬물 말고도 다른 경위로도 니코틴을 섭취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그 찬물을 마시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습니다. 그 이유로는 수사기관이 찬 물이 담겼다는 컵이나 물의 용량, 혹은 거기에 넣었다는 니코틴 원액의 농도나 양 등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또 A씨가 피우던 전자담배의 니코틴 원액이 이번 사건에 사용된 동일한 니코틴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다고 했습니다.

    [앵커]
    니코틴이 그 정도로 위험한 거면 먹었을 때 바로 느껴질 것 같은데요.

    [기자]
    네. 그래서 지난달 열린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선 재판부와 검찰이 직접 니코틴을 섭취하는 진풍경도 있었습니다. A씨 변호인이 범행 도구로 지목된 액상 니코틴을 증거로 제출한 건데요. 당시 재판부는 제출된 액상 니코틴을 손등에 한 방울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혀끝을 대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얼얼함이 느껴진다" "박하향이 강하게 난다"고 했습니다.

    검사도 같이 음용했습니다. 검사는 범행 수법으로 지목된 것처럼 종이컵에 물을 따르고 액상 니코틴 몇 방울을 떨어뜨려서 마셨습니다. 고개를 몇 번 흔들긴 했는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결국 오늘 파기환송심에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어떤 판단이었나요.

    [기자]
    수원고법 형사1부는 A씨에 대해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A씨가 니코틴 원액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보기엔 입증이 안 된 지점들이 있다는 취집니다.

    재판부는 "피해자 말초 혈액에서 검출된 니코틴 농도에 비춰보면 고농도가 필요한데, 시중에서 구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실제 니코틴 원액을 먹으면 소량이더라도 너무 자극적이어서 피해자가 몰랐을리 없다고도 판단했습니다.

    또 검찰의 주장대로 A씨가 남편의 보험금을 노렸다기에는 그 사망보험금이 크지 않고 재산상 이익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습니다. 큰 리스크를 안고 범행을 저지르기엔 얻는게 적다는 겁니다.

    남편이 타살이 아닌 극단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내비쳤는데요. 남편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해보니 '전자담배'나 '자살' 등 단어가 검색되기도 했고요. 또 A씨의 외도 외에도 부친과의 문제 등 가족 문제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이런 점들을 종합했을 때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A씨가 B씨를 니코틴 원액으로 살해했다고 보기엔 충분히 우월한 증명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앵커]
    네. 법원의 판단대로라면 다른 사망 원인이 있을 수 있겠네요. 새로운 사건으로 흘러가지 않는지 잘 챙겨주세요. 지금까지 정성욱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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