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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판결문으로 본 정부와 의료계 '30년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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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B컷]판결문으로 본 정부와 의료계 '30년 분쟁'

    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정부와 의사단체가 또다시 충돌했습니다. 정권을 불문하고 일어나고 있는 의사단체와의 충돌, 벌써 그 세월만 약 30년에 이릅니다.

    의사와 약사의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자며 정부가 추진한 '의약분업 정책'에 반발한 의사들의 2000년 파업을 시작으로, 이번에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정책'을 두고서 충돌했습니다.

    30년 싸움 속에서 양측 모두 싸움의 기술(?)이라도 찾은 걸까요? 협상 이야기보다도 법적 대응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정부는 강력한 처벌을 외치고 있고, 의사단체는 법적 대응을 말하고 있죠. 오늘 '법정B컷'은 판결문을 통해 30년 간 이어진 정부와 의사단체의 다툼을 들여다봅니다.

    2000년 유죄, 2014년 무죄… 무엇이 달랐나


    정부는 1998년 '진료는 의사에게, 처방은 약사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의약분업 정책을 추진합니다. 의사의 약 조제를 막아 의사는 진료와 처방전 작성을, 약사는 처방과 조제를 하도록 해 역할을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었죠.

    연합뉴스연합뉴스
    의사단체는 2000년 파업에 들어갑니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그해 6월에는 전국 50개 병원에서 전공의 3921명이 파업에 참여했고, 7월부터 11월까지는 전국 114개 병원에서 1만3527명의 전공의가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검찰은 당시 대한의사협회 회장이었던 김재정씨와 의권쟁취투쟁위원장을 지낸 신상진 현 성남시장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과 의료법 위반,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합니다.

    그리고 법원은 의협회장인 김씨에게 1심과 2심에 이어 3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합니다. 김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고, 서울시 의사회장을 지낸 한광수씨에게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하급심부터 대법원은 모두 김씨가 의사들에게 파업을 강제적으로 요구했고, 참여하도록 압박했다고 판단했습니다.

    2001.7.31 서울지방법원 형사2단독, '의사단체 2000년 파업' 1심 선고中 
    재판부 
    "의협은 구성사업자인 의사들의 사업 내용 또는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해서는 아니됨에도 불구하고, 피고인(김재정)은 의협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의약분업 관련 대정부 투쟁에 따른 전권을 의권쟁취투쟁위원회에 위임했다" (중략) 2000년 2월 17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가두행진을 진행했고, 이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지역 의원급 의료기관 4815개의 82.8%인 3989개 의료기관이 휴업한 것을 비롯해 전국 1만 8637개 의원급 의료기관의 79.7%인 1만 4847개 의료기관이 집단적으로 휴업하는 등 의협 소속 의사들로 하여금 집단적으로 휴업하게 했다"
     

    2심 재판부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2002.7.24 서울지방법원 제8형사부, '의사단체 2000년 파업' 2심 선고中 
    재판부
    "의협 산하 의권쟁취투쟁위원회에서 전국적 규모로 규찰대를 조직해 휴업에 불참하는 의사들을 감시하려고 계획했고, 실제로 일부지역에서 규찰대가 조직돼 활동한 점, 의사 사회 특성상 휴업에 불참할 경우 반역자로 몰리게 되는 등 심리적 압박이 심해 일부 의사들은 마지못해 휴업에 동참했고, 일부 불참한 의사들이 다른 의사들로부터 협박 및 폭언을 당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의협이 당시 집단휴업을 결의하고 의사들에게 이에 동참할 것으로 강요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중략) "피고인들이 전공의들의 진료거부에 가담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특히 전공의들의 진료거부 행위에 대해서도 법원의 판단은 엄격했습니다. '진료거부도 전공의들의 기본권 행사'라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죠.

    2002.7.24 서울지방법원 제8형사부, '의사단체 2000년 파업' 항소심 선고中
    재판부
    "다수의 전공의들이 상호 의사연락하에 집단적으로 진료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병원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해 손해를 발생하게 했다면 이와 같은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중의 위력으로써 타인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해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고 할 것이다"

    "설령 전공의들의 진료거부가 헌법상 기본권에 근거한 입법청원의 성격을 갖더라도 이로써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중대한 위협에 직면했다는 점에서 결코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없으므로 위 주장은 이유 없다"

    2024년 현재 전공의들의 파업에 대해서도 기본권 주장이 인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의견입니다. 한 의료전문 변호사는 "법을 떠나 사람 목숨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헌법상 권리가 아무리 중요해도 생명권을 넘어설 수는 없다. 위헌 심판을 하더라도 헌재가 의사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2000년 파업 당시엔 유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의약분업 이후 14년만에 원격의료에서 촉발된 의료 파업 당시 모습의약분업 이후 14년만에 원격의료에서 촉발된 의료 파업 당시 모습
    반면 원격진료 정책에 반대해 진행된 2014년 파업 당시엔 의협회장 노환규씨에게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당시 재판부는 파업 참여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봤습니다. 14년 전 파업 당시 유죄로 판단된 부분을 잘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2020.3.12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의사단체 '2014년 파업' 1심 선고中
    재판부
    "의협의 구성사업자인 의사들이 이 사건 휴업에 참여할지 여부에 관해 피고인(노환규) 등이 직접 또는 의협 명의로 구성사업자인 의사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강요하거나 이 사건 휴업 불참에 따른 불이익이나 징계를 사전에 고지한 바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휴업 불참에 따른 불이익이나 징계를 가했다고 볼 만한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 휴업에 참여한 의사의 비율이 개원의의 경우 20.5%에 불과해 휴업찬성률보다 더 낮은 휴업참여율을 기록한 점에 비춰 볼 때 피고인 등이 이 사건 휴업을 이끌기는 했으나 그 구체적 실행은 구성사업자인 의사들의 자율적 판단에 맡긴 것이라고 할 것이다"

     처벌 외치는 정부, 법전(法典) 찾는 의사… 피해는 환자에게


    30년 간 이어진 다툼 속에 양측 모두 싸움의 기술을 숙달한 것일까요?

    현재 정부와 의사단체 모두 협상보다도 법적 대응 이야기를 더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정부는 처벌을, 의사단체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며 법적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상황이죠.

    정부는 의료법 59조 1항과 2항에 근거해 전공의 등을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업무로 복귀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겁니다.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차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2024.2.16 중앙사고수습본부, '의사 집단행동' 정례 브리핑 中
    보건복지부 박민수 2차관
    "문자와 문서로 동시에 진행이 되고, 문자 발송과 함께 동시에 도달의 효과가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요.


    지난 2020년 문재인 정권도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는데, 당시 전공의 등은 휴대전화를 꺼버리는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업무개시명령이 자신들에게 도달하는, 즉 송달을 막기 위함이었죠.

    결국 박민수 2차관이 '문자를 통한 송달도 법적 효력이 있다'며 일찌감치 강조한 것도 2020년 전공의들의 대응 방식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정부가 이처럼 송달에 총력을 다하는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2000년 의사파업 당시 신상진 위원장에 대해선 송달 절차에 하자가 드러나 1·2심 유죄 판결이 대법원에서 깨진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정부는 신 위원장에게 '공시송달'로 업무개시명령서를 전달했는데, 대법원은 위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공시송달은 온갖 수단을 동원했는데도 상대의 주소지를 알 수 없거나, 또는 송달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활용돼야 하는데 당시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고 본 겁니다.

    2005.9.29 대법원 1부, '의사단체 2000년 파업' 상고심 선고中
    재판부
    "경기도지사는 2000년 6월 21일 휴업 중인 전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업무개시하라는 명령을 공고하면서 공고의 효력은 2000년 6월 21일 오전 9시부터 발생한다고 정한 사실이 인정되나, 
    경기도지사의 위 공고 당시 피고인의 주소 등을 통상의 방법으로 확인할 수 없다거나 송달이 불가능한 경우라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므로 경기도지사의 2000년 6월 21일 공고는 피고인에 대한 이 사건 업무개시명령의 송달로서 효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현재 정부는 등기우편과 수련부장 통보, 문자메시지 발송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송달하고 있습니다. 법조계는 '정부가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송달을 둘러싼 법정 공방에 대비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문자메시지를 통한 업무개시명령이 송달 효력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일단 정부가 다양한 방식의 송달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은 이후 법정공방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재판에서 정부는 '우리는 송달을 위해서 최대한의 노력을 다 해봤다'고 말하려 할 것, 명분 쌓기 성격이 강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대로 전공의들 사이에선 업무개시명령 송달을 피하는 방법 등이 공유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송달하려는 자와 피하려는 자의 수싸움입니다.

    결국 가장 큰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정부와 의사단체의 다툼이 담긴 여러 판결문들도 하나 같이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등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라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양측이 어떠한 명분을 갖췄든 간에, 또 어떤 법률적 쟁점으로 무장하더라도 우리 법률이 '수호해야 할 최고의 법익이자 절대적 가치'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 '사람의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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