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변은 없었다. 지난 28일 통계청이 내놓은 '2023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2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2022년(0.78명)에 이어 0.7명대는 간신히 지켰지만, 작년 4분기(9~12월) 출산율은 사상 처음으로 0.6명대(0.65명)를 찍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촉발된 2020년부터 시작된 '데드 크로스'(Dead Cross)는 4년째 이어졌고(인구 12만 2800명 자연 감소),
전국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1'을 넘겼던 세종특별시도 2023년에는 0.97명(출생아 수 전년 대비 13.7%↓)으로 곤두박질쳤다.
2023년 시·도별 합계출산율. 통계청 제공이번 결과가 앞서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2022~2072년'의 중위시나리오와 거의 일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합계출산율은 0.68명, 내년에는 0.65명 이하로 내리 하락할 거란 전망이 유력하다.
전문가들은 이제
충격조차 무뎌진 단순 수치보다는 '낙폭'을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2021년과 2022년은 출산율이 (연간) 0.03씩 떨어졌었다. 감소의 속도가 굉장히 컸다가 줄었던 것"이라며 "지금은 '0.06'으로 (전년도 대비 간극이) 굉장히 다시 벌어졌다"고 밝혔다.
실제로 국내 합계출산율은 1년 새 0.12가 줄어든 2017년(1.17명→1.05명) 이후 0.06~0.08명 가량의 감소 폭을 보이다가 2021년(0.84명→0.81명), 2022년(0.81명→0.78명)에는 절반 정도로 하락세가 둔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센터장은 "2016년부터는 출산을 안 했던 청년들이 흐름을 약간 회복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0.8명대로 떨어진) 2020년 이후 그게 멈췄다는 의미고
(앞으로는) 더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는 시그널"이라며 "특히 연말에 (낙폭이) 커진 게 굉장히 찝찝하다"고 평가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전국에서 아이를 가장 많이 낳는 경기도에서 출생아 수 하락 폭(-8.6%, 7만 5300명→6만 8800명)이 상당히 큰 것도 부정적 징후로 진단했다.
출생아 수 및 합계출산율 추이(2013~2023년). 통계청 제공진짜 문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021년 기준 1.58명)의 반토막도 안 되는 '초저출산'이 사회문화적 풍토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 때문에"라고 외부 요인을 특정해 답하는 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센터장은 "'이런 게 어려워서 안 낳는다'는 건 저출산의 이유지, 출산율이 왜 (계속) 떨어지는지에 대한 답은 아니다. 무언가 다른 하방을 추동하는 요인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며 "경제적 요인 등이 (출산을) 가로막는 걸 넘어
청년들의 내부에서 강하게 작동하는 문화적·의식적 요인, 가족(구성)에 대한 회피 등이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선택'의 영역이 된 지 오래인 결혼을 하더라도, 의지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도 증가 추세다. 이는 기혼가정의 출생아가 대부분인 한국에서, 더 이상 혼인 인구의 증감을 출산 추이와 직결시켜 해석하기도 어렵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 대목에서 정책적 고민을 토로했다. 임영일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0.6명대'까지 떨어지진 않을 거란 게(시각이) 보편적이었던 것 같다"며
"결혼을 하지 않는 것, (또) 결혼하고서도 애를 낳지 않는 부분에서 '왜 그럴까'를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OECD 회원국의 합계출산율 비교(2011년, 2021년). 통계청 제공 저출산 정책의 '컨트롤 타워'를 자처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12일, 주형환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저고위 부위원장에 위촉하는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장관급인 부위원장(위원장은 대통령)의 임기가 2년인 점을 고려하면, 약 1년여 만에 자리를 내준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실상 '경질'됐다는 게 중론이다. 윤 대통령은 올 초부터 '데이터'에 기반해 현 저출산의 원인 및 정책효과를 설명해줄 수 있는 전문가 모색을 주문하는 한편, 필요 시 위원 교체 등 인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정부의 초대 저고위 수장이었던 나경원 전 의원이 석 달 만에 '전당대회 논란'으로 해임되면서, 상임위원에서 부위원장이 된 김 교수는 학자 출신이란 한계로 조직에 대한 '그립'(장악력)이 다소 미흡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윤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에서 강조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접근"을 위해서는, 관련 대책에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행정고시 26회로 공직에 입문한 주 부위원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기획재정부 차관과 산업부 장관을 지낸 '경제통'이다. 정통 관료 출신이 저고위 수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내정 이유로 "업무를 끈질기게 챙기는" 집요함과 "정책을 밀고 나가는" 추진력을 들었다. 또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한 번 맡은 일은 확실한 성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 주 부위원장에 대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를 속도감 있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산율 발표 당일, 저고위가 "유례없이 심각한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밝힌 방침도 "수요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분야에 정책적 역량을 선택·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릴레이 간담회'도 시작했다. 주 부위원장은 지난 26일 난임부부들을 비공개로 만난 데 이어 △맞벌이 가구(내달 6일) △영유아·초등자녀를 둔 가구 △한부모 가구 등의 의견을 차례로 경청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실증적 분석'을 토대로 기존 저출산 정책을 평가해 우선순위를 '재구조화'하는 작업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저고위 관계자는 "속도감 있게 기존 자료들을 재검토하고 (부위원장이) 매일같이 회의를 주재하며 (대책 발표를) 준비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당초 전임 김 부위원장이 '2말 3초'쯤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던 '저출산 중장기 전략'의 발표 시점은 현재로선 3월 말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28일 경총회관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예방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일·가정 양립제도가 실효성을 갖도록 근로시간 유연화와 가족친화 기업문화 조성을 위한 재계와 정부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뜻을 모았다. 저고위 제공'저출산'이란 현상이 청년들의 고용·주거·양육 부담과 경쟁압력, 지역 불균형 등 다양한 사회구조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누적되어 나타난 결과임을 고려하면 "중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순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게 저고위의 입장이다.
정부는
부위원장을 부총리급 상근직으로 '격상'하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예산 편성이나 부처별 정책 조정 등의 권한이 없다는 점에서 '빛 좋은 개살구'에 비유돼온 저고위에 저출산·고령화 정책을 총괄할 실질적 힘을 실어주기 위한 취지다.
재정당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주 부위원장이 몸담았던 기재부 소속 '에이스'들을 저고위에 배치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인적 쇄신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방법으로든
안정적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할 수 있는 '실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 센터장은 "힘이 있다는 것은 (이를테면) 각 부처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관련 예산을 더 내게 만드는 것"이라며 "어차피 사업 위주로 (저출산 정책이) 진행될 거라 생각하면, 그 힘은 부총리급이 될 때 나온다기보다
'대통령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챙기는가'가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저고위가 구상 중인 '육아휴직 전면 확대'(부모들이 '누구나, 필요한 시기에, 자유롭게' 육아휴직 등을 쓸 수 있는 근로환경)를 현실화하려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을 활용한 '인구특별회계' 도입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이 센터장은
"이전 방식의 사업이나 정책만으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며
"굉장히 과감한 구조개혁을 하지 않고서는 힘들다. 이젠 정치권이 나서서 '집값은 떨어져야 하고, 학벌은 약화돼야 한다' 등의 방향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고 그 전환의 수준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