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지난 4일 개막했다. 이번 양회는 중국 경제에 침체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치러진 만큼 중국 당국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특히, 중국 경제를 총괄하는 리창 국무원 총리가 임명 이후 처음으로 5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정부 공작보고(업무보고)를 하는 만큼 전세계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뻔한 결과 뿐이었다. 이미 예상한대로 중국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전년과 같은 5% 안팎으로 제시했고 재정적자, 물가상승률 등의 주요 목표치가 전년과 동일했다.
중국 경제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만큼 이번 양회에서 경기 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부양책 등 특단을 대책을 내놓을 것을 기대했던 시장은 크게 실망했다.
공작보고의 상당부분을 경제로 채워넣기는 했지만 새로울 것 없는 재탕 수준이었고, 오히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인 집권 체제에 대한 충성서약이 보다 눈에 띄었다.
리 총리는 업무보고에서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의 집행자·행동파·충실한 행동가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또, "당 중앙의 결정과 안배를 잘 이행(관철)한다"고 수차례 말했다.
"군사위원회 주석 책임제를 전면적으로 관철할 것"이라며 시 주석의 군 장악력 강화를 공언하기도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를 두고 충성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설하는 리창 중국 총리. 연합뉴스사실 시 주석에 대한 리 총리의 충성은 화제거리가 될 만한 일도 아니다. 리 총리는 시 주석의 측근 그룹인 '시자쥔'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의 성공신화는 시 주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방의 평범한 관료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리 총리는 지난 2002년 저장성 당서기로 부임한 시 주석의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며 인연을 맺은 뒤 고속승진을 거듭하다 중국 권력서열 2위 자리에까지 올랐다.
시 주석의 신뢰가 두터운 그가 총리가 되자 당시 경제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전권을 부여받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20여년 전과 마찬가지로 시 주석의 비서실장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헝다, 비구이위안 등 대형 부동산업체들의 위기로 촉발된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소비와 수출 등 중국 경제가 위기에 처해있지만 리 총리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 주석이 직접 경제 현안을 챙기는 모습이 보다 자주 눈에 띈다.
존재감 없는 총리의 최고봉을 찍은 것은 지난 1993년 이후 정례화된 양회 폐막날 총리의 내·외신 기자회견을 폐지한 것이다. 갑작스런 결정의 배경을 현재 리 총리의 위상과 관련지어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같은 상황은 시 주석이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3연임에 돌입하며 1인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할 때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중국은 그동안 7인 또는 9인의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에게 분야별로 권력을 나눠줘 통치하는 집단지도체제를 이어왔다.
그러나 시 주석은 3연임이 확정된 지난 2022년 10월 제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그동안 각 계파별로 안배했던 상무위원을 모두 자신의 측근들로 채우며 집단지도체제를 사실상 무력화 시켰다.
여기다 더 나아가 양회의 대미를 장식하던 총리 기자회견이 30여년 만에 폐지되면서 양회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시 주석에게 쏠리게 됐다. 기자회견 폐지를 그나마 형식적으로라도 유지되던 집단지도체제의 완전한 종언을 고하는 사건이라는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