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세월호 선상추모식서 헌화를 마치고 돌아서는 유가족 배희춘씨. 박인 기자"향매야. 제발 아빠 소리 좀 들어다오. 아빠가 헌화하러 왔다"
배희춘(66)씨는 야근하던 날마다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려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리던 늦둥이 딸 2학년 9반 고(故) 배향매양을 잃은 슬픔이 10년이 지나도 익숙하지 않다.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이었지만 딸이 잠든 이 곳을 찾을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2015년 이후 차마 한번도 찾지 못하다 10주기를 맞아 큰 결심을 했다.
이날 오전 7시 전남 목포시 목포항에는 세월호 참사로 가족과 지인을 잃은 유가족 37명이 덤덤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잠든 진도 맹골수도를 찾기 위해 배 위에 올라탔다.
뜻하지 않게 10년의 긴 세월을 함께 보내야만 했던 유가족들은 "00아빠는 왜 안왔냐"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이들은 혹시나 어디가 아픈건 아닌지, 병원에 간 건 아니냐며 되묻기도 했다.
오전 10시 30분쯤 88km를 세시간 동안 달려 도착한 진도 맹골수도 참사 해역 부근에서 2학년 8반 고(故) 이호진군의 아버지 이용기씨의 인사말로 추도식이 시작됐다.
16일 추도사가 시작되자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들의 모습. 박인 기자이어 2학년 3반 고(故) 김빛나라양의 아버지 김병권씨의 추도사가 시작되자 덤덤한 표정의 유가족들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새어나왔다.
김씨는 "무심히 지나온 세월을 거슬러 그 시간을 되돌아간다면 너희들을 그 배에 태우지 않았을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며 "(정부는) 내 자식을 떠나보내고 눈물 속에 살아가게 하지 말아달라"고 울먹였다.
유가족 중 가장 먼저 눈물을 보인 배씨는 추도사가 끝날 때까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이후 10시 48분쯤 헌화가 시작되자 첫 번째로 달려나가 국화를 바다에 던지며 울부짖었다.
배씨는 5년 전 오랫동안 살던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을 떠났다. 버스정류장을 지날때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이 끝난 아빠를 기다리던 향매가 잊혀지지 않아서다. 배씨는 "그 버스 정류장만 가면 진짜 미치겠다"며 "내가 (향매를) 따라갈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16일 아들을 부르며 쓰러지는 유가족을 부축하는 자녀들. 박인 기자
한 유가족은 바다를 향해 "아들, 꿈에 제발 한번만 나와달라"며 울며 소리쳤다. 함께 온 자녀들은 엄마를 위로하느라 들고 온 국화를 차마 바다에 보내지 못하고 한참을 눈물만 흘렸다.
누구보다 서로의 슬픔을 잘 이해하기에 유가족들은 추모식이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며 울음 바다를 이뤘다.
16일 한 유가족이 세월호 참사 인근 해역에 국화를 던지고 있다. 박인 기자이날 추도식에는 10주기를 맞아 단원고 학생 250명의 이름뿐 아니라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교사, 일반인 등을 포함한 사망자·미수습자 총 304명의 이름이 모두 호명됐다.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는 전남 목포신항에 멈춰있는 세월호 선체 앞에서 추모 문화제가 진행된다. 오후 3시에는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