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연세대학교 원두우신학관에서 열린 '박영식 교수 징계의결 철회 요구 공동 기자회견'. 이들은 "내용이 특정되지도 않은 '교단의 창조론'과의 불일치라는 사유를 빌미로 학문연구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대학의 본질을 심대하게 훼손하는 위중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서울신학대학교(총장 황덕형· 이사장 백운주)가 창조과학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교단의 창조론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소속 교수를 중징계에 회부했단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계 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앞서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는 지난 2020년, 서울신대 신학전문대학원에 창조과학 강의가 개설되자 이를 비판하는 글을 SNS에 올렸고, 일부 목회자들이 이에 문제를 제기하자 서울신대 측은 '신학검증위원회'를 꾸려 박영식 교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왔다.
위원회는 "박 교수가 그의 책 '창조의 신학'과 기타 논문, 강의 등에서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으로 깎아내리고, 유신진화론을 옹호했다"며 박 교수의 창조신학이 성결교단의 창조론과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중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지난달 6일 서울신대 법인 이사회는 박 교수의 창조신학이 성결교단의 창조론을 반영하지 않는다며 교원징계위원회에 징계의결요구서를 보내 최소 정직에서 최고 파면에 이르는 중징계를 주문했다.
전국 신학자·기독 교수들, "21세기 갈릴레이 재판" 반발
박영식 교수 지지자들. 이들은 서울신대에 박영식 교수의 징계논의를 즉각 중단할 것과 사상 검증에 대한 공개 사과, 재발 방지 약속을 요구하며, "서울신학대학교가 모범적인 교단과 신학기관이 되는 기회로 이번 사태를 선용해 마무리해달라"고 요청했다.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전국 신학자들과 대학교수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기독교교양학회· 한국문화신학회· 한국민중신학회· 서울신대 교수협의회가 잇따라 성명을 발표하고, 서울신대가 학문의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징계를 철회하라고 규탄했다.
지난 17일엔 숭실대·연세대·성공회대 등 주요 기독대학 교수들과 다수의 조직신학자·과학자들이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박영식 교수에 대한 징계 의결 철회를 촉구했다.
조직신학자 54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박영식 박사에 대한 징계 조치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신앙을 죽은 글자와 조문에 가두어 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번 징계 조치는 교단의 신학을 빌미로 한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보편교회의 살아있는 신앙고백을 시대적·문화적·지적으로 제한된 특수한 주장에 고착시켜 버림으로써 교회의 신앙을 화석화 시켜버리는 과오를 범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회 일동은 "서울신대는 학교 밖 일부 목회자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 견해를 침소봉대해 징계 빌미로 삼고 있다"며 "이미 학문적 논의와 검증이 충분히 된 사안을 문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러한 처사는 편향된 관점으로 한국 신학계의 학문적 검증 절차와 출판 문화의 건전성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신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분과를 발전시켜온 서울신대가 그간 쌓아온 덕망과 명예에 오점을 남기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영식 교수 "이번 사태 핵심은 학문의 자율성 훼손과 교권·인권 침해"
입장문 발표 중인 박영식 교수. 박 교수는 "성결교회의 전통과 서울신학대학의 학문성이 더는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그동안 정말 괴롭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정말 많은 분의 기도와 응원 덕분에 일어설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박영식 교수는 이번 사태의 핵심은 학문의 자율성 훼손과 교권, 인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학교 측이) 미리 짜놓은 프레임으로 본의를 왜곡·위조했고, 작위적인 추론과 과장을 거쳐 이단으로 몰아세웠다"며 "신학 검증·자술서 서명 강요·연구년 불허를 비롯해 조사위원회로부터 교수와 목사로서의 교권과 명예를 침해당하는 질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박영식 교수는 표면적 이유인 창조신학 논란에 대해서도 자신의 창조신학이 교단의 창조론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우리 교단은 축자 영감설이나 문자주의 해석을 지지하지 않았다"며 "공식적으로 창조과학에 동의한다는 입장에 선적도 없고, 그 틀에 담겨 있다고 판단하기에도 굉장히 근거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결교회의 존경받는 신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창조과학의 반지성주의 때문에 선교의 길이 막히고 있다', '창조과학의 논리는 시대착오적이다', '지구의 연대는 6천 년이 아니라 수억 년이다, 그래도 성경의 증거는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다' 등의 구체적인 서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특히,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이 아니라 무신진화론의 반대말로서, 과학주의 무신론을 비판한다"며 "한경직 목사를 비롯해 빌리 그래함이나, 신학적으로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벤자민 워필드, 그리고 C.S.루이스나 알리스터 맥그라스, 판넨베르크 등이 모두 유신진화론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의 신론이나 인간론, 구원론, 심지어 창조론 등을 하나로 묶어 싸잡아 비판할 수 있느냐"며 "삼각형,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 등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싸잡아 '각이 있는 도형은 다똑같다'라고 말하다가 결국엔 '모두 원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지나친 과장과 억측일 뿐"이라고 말했다.
박영식 교수는 리처드 도킨스 등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의 무신진화론을 학문적으로 비판하는 활동을 펼쳐왔다. 과신대 유튜브 채널 갈무리.연세대 신학 교수들은 성명을 통해 "박 교수의 창조신학이 성결교단의 창조론과 배치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며 "보편교회의 일치되고 전통적인 창조신앙을 고려할 때, 오히려 창조과학이 유사과학이며 신학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숭실대 기독교 관련 전공 교수들도 "박영식 교수의 창조신학은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교회의 신앙과 결코 배치되지 않으며, 오히려 자연과학 이론들과 진지하면서도 비판적으로 대화함으로써 신앙을 변증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며 "박 교수가 사용한 자료들이 모두 오늘날 세계의 유수한 신학기관들에서 당연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징계 관계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영식 교수는 "이번 징계 시도가 그동안 학교와 교단이 다져놓은 포용적이고 복음적인 전통을 허물어버릴까봐 염려스럽다"며 "(창조과학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엄밀한 학문의 장에 끌어들인 본인들의 잘못을 은폐하고자 그동안 지켜온 균형잡힌 신학을 보수복음주의로 퇴행시키려는 시도가 아닐까 의심한다"고 밝혔다.
창조과학·기독교반지성주의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이번 사태가 확산하면서 창조과학과 기독교 반지성주의에 대한 신학자와 목회자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숭실대 기독교수들은 "'창조과학' 혹은 '창조주의'는 창조와 관련된 성서 본문들에 대한 주석적이고 신학적인 연구를 부정하고, 자의적이고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가려버리고 만다"며 "진지한 신학자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염려의 대상이 되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이고 실존적인 신뢰를 유사과학의 수준으로 격하시켜 버림으로써 성서의 말씀에 대한 불신자들의 의심과 조롱을 강화한다"며 "종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교회의 증언을 신뢰하기 어렵게 만들어 버리는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 철학, 신학 등 다양한 전공의 전문인들로 구성된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박영식 교수에게 내려진 징계 사유 이면에 현대과학을 부정하려는 반지성적인 태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과신대는 "기독교는 당대의 자연철학, 자연과학과 대화하며 교리를 구성하고 이해해 왔다"며 "이는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깊은 통찰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울신대와 이사회가 주장하는 창조신학이 현대과학을 통해 드러난 과학적 결과들을 거부하는 태도에 기반한다면, 그 자체로 기독교 전통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반지성적 종교로 오인하게 만든다"며 "이는 오히려 규탄받을 일"이라고 말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전 총회장인 성락성결교회 지형은 목사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SNS에 글을 게재하고 "성경은 글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신앙 고백"이라며 "태초의 창조가 6천 년 전에 일어났다고 해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 목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가진 신앙의 내용은 그 시대의 과학과 문화적 인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신학의 임무는 66권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의 진리를 각 시대와 문화권에서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제도적인 교회는 신앙의 진리, 신학, 과학과 문화의 세 가지를 사려 깊게 분별해야 한다"며 "신앙의 진리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지만, 신학과 과학 및 문화에 관해서는 충분한 자유를 주어야 하고,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과 다변하는 문화적 상황에서 양자가 자유롭게 토론하게 해야 한다"고 전했다.
지형은 목사는 "이사회와 학교 측에서는 교단 신학의 창조론을 지킨다는 것 같은데, 우리 교단의 창조론이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정하는지 모르겠다"며 "서울신학대학교 교수들의 학문적 양심과 소신, 이사회 행정의 신중함과 정당성, 이미 외부로 확대된 여러 상황의 원만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서울신대 신학부 교수진 "유신진화론, 교단 창조신앙에 어긋나"
한편,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부 교수 25인은 이번 징계 논란과 관련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유신진화론은 성결 교단의 창조 신앙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수들은 다양한 학문적 관점을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칠 학문적 자유를 가질 수 있다"면서도 "자연발생적 진화를 통해 인간이 출현했다고 주장하는 진화론과, 진화론을 신학에 적용하며 성경 가르침에 어긋나는 요소를 포함한 유신진화론은 성결교회가 고백하는 창조신앙과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고백과 일치하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신대는 "박영식 교수에 대해 교단 및 외부에서 제기되는 신학적 정체성 논란이 우리 대학 건학 및 교육 이념에 위배되며, 타인에 대한 모욕적인 글을 SNS에 게시한 것은 교원으로서 품위 손상과 대학 명예를 실추시킨다고 판단해 법인이사회에 보고했고, 법인이사회의 요청에 따라 징계 절차가 진행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학교 측은 "박영식 교수에게 약속한 대로 신학적 관점을 복음적, 포용적으로 개선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으나, 박 교수는 지금까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수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언론, 학회, 동기회, SNS 등을 동원해 대학과 법인 이사회를 비방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지속해서 주장하고 있다"며 "일부에서 제기된 문제들과 신학적 정체성 문제로 불거진 갈등은 이제 대학본부 차원을 넘어섰고, 이사회 징계위원회를 앞둔 지금, 모든 절차와 결과가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국창조과학회도 입장문을 내고 "유신진화론은 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타협이며,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며 "신학대학에서 유신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창조과학은 실험적으로 증명된 과학법칙과 과학적 사실들을 부정하지 않는다"며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진화론과 빅뱅우주론 및 이들 이론과 타협한 유신진화론을 부정할 뿐"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영식 교수의 징계위원회는 오는 25일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