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복지부 제공"현재 전공의 공백 속에서도 의료현장을 지키고 계시는 의사 선생님들,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기타 의료진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리고 또 상급종합병원에 부하가 많이 걸릴 것을 생각하셔서 자발적으로 종합병원이나 동네 의원을 찾아주시는 국민 여러분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아시다시피 전공의가 상급종합병원에 있어서는 많으면 전체 의사 수의 40%까지 차지하기에, 그분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비상진료 운영도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습니다. 저희(정부)가 군의관·공보의(공중보건의사)도 투입하고 간호사 진료지원 범위도 확대하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데, 이것이 지속가능하지는 않습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전제는 '의사들이 있는 의료현장'이 아니냐는 질의에 이같이 답변했다. 곧이어
"하루빨리 전공의 분들이 돌아와서 자리를 메워 주셨으면 좋겠다"고도 밝혔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규정한 '3대(노동·교육·연금) 개혁'을 누르고 현 정부의 '시그니처 정책'이 돼버린
의료개혁이 지금과 같은 전공의 부재를 상수로 깔고 진행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적용되는 '의대 2천 명 증원'이 의료개혁을 대표하는 핵심과제이자 복지부가 윤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내세운 최대 치적이란 점을 고려하면 웃지 못할 아이러니다. 실제로 이날
기자단에 배포된 '보건복지 주요 성과 및 향후 계획' 자료에는 '의료개혁'이 5가지 나열 항목 중 1순위로 꼽혔다.목차에 같이 오른 나머지 과제(이자 성과)는 △약자복지 강화 △저출생 대응체계 강화 △상생의 연금개혁 추진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 등이다.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 0.72명으로 최저치를 갈아치운 저출산 문제는 물론, 현 21대 국회에서 시민 공론화까지 완료하고도 개혁안 여야 합의가 결렬된 국민연금 개혁에 이르기까지 박한 성적을 줄 수밖에 없거나 향후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상당한 시간·재정 투자를 요하는 사안들이다.
의료개혁은 '적어도' 내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 확정이 임박했단 점에서 이와 결을 달리한다. 취임 직후 기자회견 이후로는 한 번도 공식적인 언론간담회를 갖지 않았던 조 장관이 1년 6개월 만에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의 증원 집행정지 신청 각하·기각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재판부에 제출된 정부 측 자료 일체를 공개한 의료계와 얼굴 붉혀가며 얻어낸 승리라 자축하기엔 상황이 다소 참혹하다. 행정·입법부에 이어 사법부도 의사 증원에 기반한 개혁 정당성을 인정했다고 하나, '의료대란'이라고까지 표현되는 진료 공백을 부른 전공의 이탈은 해소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22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과 응급의학과 사직전공의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할 편지와 책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레지던트는 총 658명에 그쳤다. 해당 병원들에 소속된 전체 전공의(9996명) 대비 6.6%에 불과한 비율이다.
세브란스병원 등 전공의 사직이 본격 시작된 2월 19일을 기점으로 95일째가 되도록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의대 교수와 함께 이들의 빈자리를 채워 온 전임의(펠로우) 계약률이 67.4%, 이른바 '빅5' 병원 기준으로 70.9%까지 올랐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상급종합병원 등의 정상화는 요원하다. 정부의 공언대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환자 중심 진료를 위해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구조 자체를 뜯어고친다 해도 이는 장기간에 걸친 체질 개선이지, 당장의 해결책이 될 순 없다.지금껏 '전공의 없이' 버티기 위한 자구책은 크게 조 장관이 언급한 2가지, 즉 '환자들의 자발적 중소병원 내원'과 월 1900억대의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한 '비상진료체계 가동'이었다. 후자엔 필수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취약지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보의와 군의관 동원도 포함된다.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면서, 정작 격오지의 의료공백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고 있는 모순적 양상이다. 정부는 23일부터 내달 16일까지 4주간 군의관 120명을 추가로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4차 파견 인력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 주요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러한 미봉책을 길게 유지하기 어렵단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정부다.
조 장관은 '수련공백 3개월'을 넘겨 내년도 전문의 자격 취득이 어려워진 전공의가 상당수란 점이 대규모 전문의 수급난으로 직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일단 정부는 비상진료 체계를 유지하면서 환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하겠다"며 보상체계 개선 등도 대안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가 없다. 전공의들이 빨리 돌아오셔서 환자들도 돌봐주시고, 본인들이 당초 세웠던 진로(계획)에도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의료체계를 갑자기 정상화할 수 있는 '묘책'은 없다며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가속화하는 것이 정부의 최선이라고 했다. 현재 특위 내 전공의 등 의사단체 추천 위원이 공석이란 점에서 이 또한 결국 전공의 복귀 없인 답이 없다는 말과 같다.
보건복지부 제공
다른 결과값을 내려면 그간과 구별되는 변수가 필요한데, 아직까지 정부 대응은 원론적인 '간곡한 호소'에 머물러 있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며 미복귀(업무개시명령 불복)에 따른 행정처분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처분 절차 재개시점이나 복귀 여부 관련 차등적용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는 것도 자칫 혼선만 키울 수 있다.
조 장관은 "저희라고 이렇게 (전공의들에 대한) 처분을 하고 싶겠나"라며 행정처분에 돌입해도 최대 3개월이 걸리는 과정 중 전공의들이 복귀한다면 정상참작을 고려하겠다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