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분만을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분만 인프라가 붕괴하고 있다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는 4일 '붕괴된 출산 인프라, 갈 곳 잃은 임산부, 절규하는 분만 의사들'이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산부인과 교수와 개업의들이 한데 모여 기자회견을 연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최근 산부인과 전문의가 급격히 줄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최근 10년간 배출된 산부인과 전문의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며 "산과를 선택하는 비율은 10% 미만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마저도 단기간 월급 의사로 일하다가 미용, 성형, 난임과 같은 분야로 전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는 불가항력적인 분만사고에 대한 턱없이 부족한 국가 보상금과 분만사고에 대한 의료 소송시 과다한 배상금으로 인한 두려움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짚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한국의 분만 인프라는 이미 '골든타임'을 지났다고 지적했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신봉식 회장은 "이제는 서울도 (분만에 있어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이미 분만 인프라 붕괴를 막는 '골든타임'이 지났을 수도 있다. 더는 대안이 없을 것 같아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의 분만 인프라조차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주산의학회 홍순철 교수(고려대학교 안암병원)는 "지난달 연휴에 어느 지역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올라와서 '25주 산모를 받아줄 수 있느냐'고 묻더라"라며 "서울 시내 및 수도권 모든 고위험 센터에 연락했는데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우리 병원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병원이 받아주기 싫어서 받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며 "고위험 분만 담당 교수, 중환자인 신생아를 치료할 수 있는 교수 및 마취과 의사가 있어야 하고, 병상도 필요하다. 여러 조건이 동시에 맞는 기관은 없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산부인과 의사들은 분만 인프라 붕괴의 원인으로 불합리한 의료소송을 꼽았다.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박인양 회장(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은 "막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의사들에게 '고위험 산모 분만을 응대할 사람이 있느냐'고 조사해 보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또 "(의료소송에서 패해) 보상 판정이 난 액수를 국가에서 부담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재원을 마련해 보상해 준다면 고위험 산모를 맞이할 수 있는 산과 의사를 안정적으로 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그동안 저출산과 고령화를 한데 묶어 예산을 썼지만, 이제는 저출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신봉식 회장은 "16년 동안 저출산과 고령화에 쓴 돈이 380조 원"이라며 "저출산에만 단독으로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해 적절하게 집행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은 당장 분만 인프라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홍순철 교수는 "분만 인프라 붕괴 문제는 당장 오늘내일의 문제"라며 "증원된 전문의가 나오는 것은 10여 년 뒤의 일이고, 지금 당장 고령의 임산부가 갈 곳이 없다"고 토로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정부에 △분만사고 보상법 개정 △분만 수가 현실화 △산부인과 의사와 관련 인력 양성 지원 △지역별 분만 병·의원 수 적정 수준 확보 등 4가지 대책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