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단체 겨레얼통일연대 회원들이 지난 7일 밤 강화도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모습. 겨레얼통일연대 측 제공일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가 북한 오물풍선 살포의 명분으로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곡해해 전단 살포를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국민의 신체·재산에 위협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경찰을 통해 대북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고 명확히 판단한 바 있다.
특히 제지 주체인 경찰은 '북한 오물풍선이 국민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판단하기 어려워 대북전단을 제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경찰특공대 폭발물처리반(EOD)까지 신속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해 모순된 행보 아니냐는 물음표가 붙는다.
대통령실도 "최근 일련의 북한 도발이 우리 국민들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 결정까지 내린 터라 경찰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다.
'표현의 자유'만 말하는 尹정부…헌법재판소 결정문 보니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와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맞대응이 지속된 상황에서도 정부는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헌법재판소가 대북전단에 대해 표현의 자유라고 판단했기에 막을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헌재 결정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입장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헌재는 지난해 9월, 대북전단 살포를 전면 금지하고 형사처벌하는 남북관계발전법 24조, 25조에 대해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결정문을 살펴보면 헌재는 대북전단을 전면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대북전단이 국민에 대한 위협을 초래할 경우 경찰을 통해 사전에 제지할 수 있음을 명확히 밝혔다. 북한은 탈북민단체와 기싸움을 하듯 지난달 28일부터 1300개에 달하는 오물풍선 살포 도발을 진행했다.
2023.9.26 헌법재판소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위헌 심판 결정문 中 |
"(중략) 심판대상조항이 초래하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매우 중대하다. 그렇다면 심판대상조항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돼 청구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
"심판대상조항이 추구하는 주된 목적인 국민, 특히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 보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형벌권의 행사가 아니더라도 전단 등 살포행위 전에 이를 신고하도록 하고 그 신고에 대해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함으로써, 접경지역 주민 등의 생명·신체의 안전 보장이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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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시 경찰을 통해 충분히 제지할 수 있는 상황이기에, 대북전단 살포를 전면적으로 막고 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 헌재 판단의 주요 내용인 것이다.
2023.9.26 헌법재판소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위헌 심판 결정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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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제1항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에는 경찰관이 그 장소에 모인 사람 등에게 경고를 하거나, 매우 긴급한 경우 위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사람을 필요한 한도에서 억류·피난시키거나, 그 장소에 있는 사람 등에게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하게 하거나 직접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전단 등 살포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위 법률조항 등을 근거로 전단 등 살포를 제지할 수 있고, 그 제한이 과도하지 않은 이상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바 있다"
"접경지역은 군과 경찰 등이 상시 정찰하고 있으므로 전단등 살포 징후가 포착되면 경찰공무원이 출동해 현장 상황을 파악·통제할 수 있고 (중략)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나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경고를 하고, 위해 방지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전단 등 살포를 직접 제지하는 등 상황에 따라 유연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제1항 등에 기한 조치는 심판대상조항의 일률적인 금지 및 처벌과 비교해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 달성에는 지장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덜 침익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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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실제적 피해와 위협"…경찰청장은 "심각 위협 아니다"
9일 은평구 갈현동 주택가에서 발견된 대남 오물풍선 잔해. 합동참모본부 제공이처럼 헌법재판소가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대북전단을 제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현재 경찰의 시각은 다르다.
경찰은 대북전단의 맞대응격으로 날아오는 오물풍선이 국민에게 심각하고 급박한 위협을 가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심각한 위협이 아니기에 전단 살포를 제지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국민의 신체에 급박한 위협이 있을 때 (대북전단을) 제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며 "일부 단체에서 대북전단을 보내고 북한이 맞대응으로 오물풍선을 보낸 상황인데, 오물풍선을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위협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살포 지역에 (2014년) 고사포 사격 위협과 같이 구체적이고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이 있는 경우에만 제지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순 오물이 아닌 더 심각한 피해를 주는 도발이 있을 경우에나 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있다는 식으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경찰은 한편에선 오물풍선에 대한 긴급 대응 태세를 갖추고 있다. 윤 청장은 "경찰특공대 EOD(폭발물처리)팀과 기동대도 신속 출동 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오물풍선의 위협성에 대한 경찰의 시각은 대통령실과도 달라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미 오물풍선에 대해 "국민에게 실제적 피해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달 2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북한 정권의 이런 저열한 도발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실제적이고 현존하는 위협을 가함으로써 국민들의 불안과 우리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대통령실 추진으로 9·19 군사합의의 효력을 이달 4일 정지했다.
실제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11일 발표를 통해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로 서울과 경기에서 총 12건의 차량, 주택 파손 등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와 경기도는 피해 지원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