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간사 선출을 위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임계를 제출한 국민의힘 소속 위원들의 자리가 텅 비어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이 '반쪽 개원'과 동시에 법제사법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국회 상임위원회를 가동해 해병대 채 상병 특검(특별검사)법안과 '방송 3+1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설치법 개정안) 추진에 들어갔다. 당장 이번 주부터 본회의를 열 계획인데, 일사천리로 쟁점 법안과 각종 특검, 국정조사, 청문회 등을 밀어붙일 태세다.
22대 국회에서 12석을 차지한 조국혁신당의 도움을 받으면 이른바 '꼼수 탈당' 없이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과 안건조정위 숙려 기간을 무력화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야당의 단독 원(院) 구성에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하며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에 나섰고,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가능성 또한 높아 당분간 극한 대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번 주 법사위·과방위에 본회의까지 요구…패스트트랙 숙려기간·안건조정위 무력화 시동
22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당론 1호 법안은 다름 아닌 지난달 말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와 재의표결 부결에 막혀 무산된 '채 상병 특검법'이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언론자유를 회복할 방송3법과 해병대원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한시가 급한 과제들이 많다"며 "상임위를 즉시 가동해 현안을 살피고 필요한 현안들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김용민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더불어민주당 제22대 국회 민생·개혁 1호 법안(민생위기 특별조치법, 해병대원 특검법)을 접수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윤창원 기자민주당은 그동안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아 온 법사위를 우회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법에서 규정한 패스트트랙 제도를 활용해 왔다. 패스트트랙은 재적의원 또는 상임위원의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지정할 수 있는데, 소관 상임위원장이나 법사위원장이 반대하더라도 '상임위·특위 180일 이내 심사 → 법사위 90일 이내 체계·자구 심사 → 본회의 부의 뒤 60일 이내 상정'의 3단계를 밟아 법안을 처리하게 된다. 21대 국회에서 최종 폐기된 채 상병 특검법 역시 본회의 상정까지 330일 이상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검법안을 담당하는 법사위원장이 민주당 소속 정청래 의원이며, 방송3법을 담당하는 과방위원장도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이다. 위원장의 반대가 없어지니 야당 단독으로 법안을 상임위를 통과시킬 수 있고, 법사위도 사실상 '프리패스'해 본회의에 빠르게 올릴 수 있게 됐다.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제사법위원장으로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산회 후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안건조정위도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6명으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는 최장 90일간 법안을 검토할 수 있고 소속 의원이 가장 많은 다수당에서 3명, 나머지 정당·비교섭단체 등에서 3명을 위원으로 선임해 6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안건을 의결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그전엔 '위장 탈당'을 통해 자당 의원을 무소속으로 둔갑시킨 후 조정위를 통과시키는 방법을 써 왔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는 민주당과 정책노선을 같이 하는 혁신당이 12명의 의원을 상임위에 배치함으로써 우군격인 '비교섭단체'가 생겨 이 같은 방식을 활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혁신당은 법사위원으로 검사 출신 박은정 의원을 내정한 상태다.
민주, 채 상병 1주기 전 특검법 파죽지세…與 반발, 尹 거부권 행사해도 강행
쟁점 법률안이 빠르게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대통령실이 '여야 합의 없는 본회의 통과 법안에 거부권 행사' 방침을 밝힌 만큼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지만, 민주당 또한 총선 민심을 근거로 관련 입법을 강행하겠다는 분위기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이날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서 "법사위 간사 김승원 의원에게 즉각 1·2소위를 구성하라고 지시했다"며 "오늘 중으로 (구성이) 되고,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소위에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행자가 '이번 주 내에 심의가 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7월 19일 발생한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 통신기록 등 주요 증거가 보존기한 1년이 지나 사라지기 전인 다음 달 19일(1주기) 이전을 목표로 특검법 처리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12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고 간사를 선임한 뒤, 채 상병 특검법까지 처리할 예정이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21대 국회에서 폐기됐던 특검법과 현재 발의된 특검법의 차이는 거의 없다"며 "법사위가 숙려할 기간은 충분히 지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방송 '3+1법'을 다루는 과방위 또한 이날 오후 4시 전체회의를 열고 김현 의원을 간사로 선임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안) 재표결이 부결되자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원들이 항의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국회법 52조는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 △의장이나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재적위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중 하나에 해당할 경우 위원회를 개회한다고 정하고 있으므로, 과방위원장과 법사위원장을 민주당이 가져간 이상 위원회 개회와 통과는 사실상 시간 문제가 됐다.
국회법 76조의 2는 의장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회기 중 매주 목요일 오후 2시에 본회의를 여는 것을 기준으로 의사일정을 작성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로 이송되고, 그로부터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하지 않으면 재의요구(거부) 없이도 확정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민주당이 여야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을 무시하고 자기 입맛에만 맞는 법안을 보낸다면 재의요구권이 행사될 수밖에 없다"며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에서 처리되더라도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더라도 이달 안에 채 상병 특검법이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채 상병 1주기인 7월 19일 전에 재의표결이 가능해진다.
민주당이 각종 쟁점법안을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전개할 경우 여야 간 대립은 더욱 극심해질 전망이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한 마디 하면 모든 것을 다 마음대로 굴릴 수 있다는 오만함의 표출"이라고 민주당을 맹비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나머지 7곳 상임위원장도 "與, 줄 때 받아라"…국방위는 '박정훈 청문회'까지 계획
하지만 정 법사위원장은 "(상임위원장 7자리를) 줄 때 받으시라"며 "'안 가져가겠다' 하는데 책임 있는 야당으로서 언제까지 일을 안 할 수는 없다"고 말해, 입법 태세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13일에 나머지 상임위원장을 선출하는 게 원칙"이라며 국민의힘이 원 구성 협상에 계속해서 응하지 않을 경우 13일 본회의에서 나머지 7개 상임위원장도 단독으로 선출할 수 있음을 언급했다. '7개 상임위원장을 맡을 민주당 후보들을 선임했느냐'는 질문에 "선정된 것으로 안다"고 답해 단독 선출 준비도 마쳤음을 시사했다.
민주당은 전체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고 나면 상임위원장 부재로 인해 회의를 열지 못하고 있던 상임위의 현안 대응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포항 영일만 앞바다의 유전 탐사 관련 내용을 질의할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북한 오물 풍선 관련 현안 질의 등을 열 국방위원회 등이다. 민주당 국방위 관계자는 "채 상병 순직 사건 관련 청문회를 열어 해병대 박정훈 대령을 부를 수 있을 것"이라며 "상임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산자위 관계자도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상임위원장만 선출된다면 유전 탐사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보고를 바로 받을 계획"이라며 "재생에너지, RE100 관련 법안 처리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오는 24일부터 이틀간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26~28일엔 대정부질문을 통해 주요 현안을 질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