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대통령에 당선된 마수드 페제시키안. 연합뉴스 이란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온건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70) 후보가 최종 당선됐다. 그는 서방과의 핵합의(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과 히잡 단속 완화 등을 공약했다.
대통령 헬기 사고로 조기 대선…3년만에 온건 개혁파로
6일(현지시간) 오전 이란 내무부와 국영 매체 등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결선투표가 잠정 완료된 결과 페제시키안 후보가 유효 투표 중 1638만 4천표(54.8%)를 얻어 승리했다.
맞대결한 강경 보수 성향의 '하메네이 충성파' 사이드 잘릴리(59) 후보는 약 1353만 8천표(45.2%)를 얻었다. 이란에서 결선으로 대통령 당선인을 가린 것은 2005년 이후 19년 만이다.
이로써 이란은 3년 만에 다시 개혁 성향 행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앞서 이란은 2021년 취임한 강경 보수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불의의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지면서 갑자기 대선을 치르게 됐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새 대통령의 임기와 관련, 라이시 전 대통령의 잔여 임기 1년이 아닌 온전한 임기인 4년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2028년까지 대통령직을 맡게 된다.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국영 IRIB 방송 인터뷰에서 "모든 이에게 우정의 손길을 뻗겠다"며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을 활용해야 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잘릴리 후보는 개표 결과가 나오자 엑스(X·옛 트위터)에 "나는 당선인이 강력하게 전진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돕겠다"고 짤막하게 올렸다.
이란이 개입된 가자지구 전쟁과 이스라엘과 군사적 충돌, 2018년 미국이 파기한 핵합의 복원 등 첨예한 현안에 대해 이번 대선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린다.
'신정일치' 구조상 대대적 변화는 어려워…'통제된 변화' 전망
지난달 28일 1차 투표에서 대선후보 4명 중 유일한 개혁 성향으로 예상을 깨고 '깜짝' 1위를 차지했던 페제시키안은 결선에서도 잘릴리 후보를 약 285만표 차이로 누르고 최종 당선자가 됐다.
특히 페제시키안이 다선 의원이긴 하지만 이번 대선 전까지만 해도 거의 무명에 가까운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당선을 두고 이란 내부에 팽배한 정부를 향한 불만이 투표로 표출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현재 이란 국민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만성적인 경제난과 민생고다. 이란은 천연자원과 노동력이 풍부하지만 50여년에 걸친 미국과 유럽의 제재로 경제가 고립과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15년 서방과 핵합의(JCPOA) 타결로 돌파구를 찾는 듯했으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고강도 제재를 부활시키자 큰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 겹치며 경제는 더욱 악화했다.
최근 10년간 달러 대비 환율이 20배로 뛰었고, 연 50% 안팎의 물가 상승, 약 20%에 달하는 젊은층 실업률 등이 대표적이다.
더군다나 2021년 집권한 라이시 전 대통령이 '히잡 시위' 등 반정부 여론을 유혈 진압하고 대거 사법처리하는 등 강경 보수 일변도 정책을 편 점도 큰 반감을 불러냈다.
다만 개혁파 정부가 새로 들어서게 됐지만, 이란 통치 구조상 대대적이고 전격적인 변화 가능성은 적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신정일치 체제의 이란은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아닌 최고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방, 안보, 외교와 같은 국가 주요 정책은 최고지도자의 결심에 따른다.
이를 두고 페제시키안 당선인이 공약했던 '히잡 단속 완화' 같은 온건한 사회 정책은 바로 시행될 수 있지만, 서방과의 관계 개선은 당장 실행되지 않는 이른바 '통제된 변화'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