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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터뷰]이종필 감독은 왜 규남의 '탈주'에 '양화대교' 넣었나

영화

    [EN:터뷰]이종필 감독은 왜 규남의 '탈주'에 '양화대교' 넣었나

    핵심요약

    영화 '탈주' 이종필 감독

    영화 '탈주' 이종필 감독.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이종필 감독.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스포일러 주의
     
    이종필 감독의 영화에는 자신을 둘러싼 차별과 구조적 모순을 벗어나고자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 자신을 압박하는 커다란 틀에 굴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말단 직원 이자영, 정유나, 심보람에 이어 '탈주'의 규남 역시 앞을 향해 질주한다.
     
    규남의 질주는 생사를 넘나든다. 현상의 추격을 따돌리는 와중에도 시시각각 목숨을 위협하는 일들이 자신을 뒤따른다. 그렇지만 규남은 멈추지 않고 앞만 보며 내달린다. 오늘의 질주 끝에 있는 것은 '내일'이라는, 그가 그토록 바란 꿈이자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 위험천만한 규남의 질주를 통해 이종필 감독은 현실의 모두가 바란 내일과 꿈을 포착했다. 전작보다 스타일리시하면서도 한층 긴장감 넘치는 모습으로 말이다. 개봉을 앞둔 이 감독에게서 왜 그는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향하는 한 청년의 모습에 주목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역시 알 수 없는, 현실 속 또 다른 규남의 삶에서 '탈주'를 발견했다.

    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왜 북한의 규남은 남한을 향해 질주하나


    휴전선 인근 북한 최전방 군부대, 10년 만기 제대를 앞둔 중사 규남(이제훈)은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북을 벗어나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해 볼 수 있는 철책 너머로의 탈주를 준비한다.
     
    이종필 감독이 '탈주' 시나리오를 만나기 전, 아프리카 출신의 청년 두 명이 영국으로 밀입국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마주했다. 어떤 삶인지는 모르겠으나 공항 활주로에 잠입해 비행기 바퀴에 몸을 묶고 밀입국을 시도했다는 내용이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에 자신의 몸을 맡겨야 했을 두 청년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증이 생겼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생각하던 중에 직장을 다니는 친구가 술에 취해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고,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 거 같다며 울부짖더라고요. 그때 아프리카 청년들도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사는 건 왜 이 모양, 이 꼴일지 생각했을 것 같더라고요. 여기 말고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들은 뭘까 생각하게 됐죠."
     
    그때쯤 우연히 질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다. 책에서는 '탈주'를 단순한 도망이나 회피가 아닌 기존 체제를 전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만난 것이 '탈주'의 시나리오였다.
     
    그렇기에 이종필 감독에게 '탈주'는 단순히 '북한'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지 않았다. 시나리오 안에서 그가 발견한 건 '보편성'이었다.
     
    그는 "나한테는 남한만 아니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야 대한민국에 사는 관객에게 '당신의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청년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회사원도 누구나 한 번쯤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을 규남의 질주로 만들기로 했다.
     
    "영화가 재밌어야 관객들이 봐주실 거 같았어요. 이런저런 생각 없이 한 번에 쫙 볼 수 있기 위해서는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렇다고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큰 콘셉트가 있어야 했어요. 그게 '악몽'이에요."
     
    이 감독은 음산하고 불안한 악몽에서 탈주한다는 콘셉트로 '탈주'를 꾸려나갔다. 그는 "점차 찬란한 꿈을 달려가는 이미지가 중요했다. 거기에 맞춰서 북한의 모습도 설정했다"라고 부연했다.

    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규남의 탈주와 함께한 '양화대교'

     
    "행복하자.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그래, 그래." _자이언티 '양화대교' 중
     
    콘셉트에 맞게 영화는 시작부터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스타일리시하면서도 빠르게 질주한다. 규남의 질주를 가로지르며 어쩐지 배경인 북한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가수 자이언티의 '양화대교'가 흘러나온다. 이 독특한 오프닝에 이종필 감독의 큰 그림이 숨어 있다.
     
    "규남에게 양화대교가 가닿는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 저 불빛을 향해 가볼까? 멈출 수 없는 거다. 그렇다면 계속 간다면?'이라고 계속 상상했어요. 탈주를 꿈꾸면서 내가 잊고 있던 걸 떠올린다고 생각했을 때 그 촉매가 '양화대교'였죠."
     
    그는 "영화를 짧은 시간 안에 쫙 펼치기 위해 형식은 뮤직비디오지만, 찍히는 건 '비정성시'(감독 허우 샤오시엔) 같은 대만 영화의 포맷을 가져가 보기로 했다"라며 "그래야 무국적성을 획득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규남을 뒤쫓는 현상, 현상을 꿈꾸게 하는 선우민

     
    꿈을 향해 질주하는 규남을 뒤쫓는 건 보위부 소좌 리현상(구교환)이다. 현상은 러시아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피아노는 마음속에 묻어둔 채 장교로서 살아간다. 그는 탈주병이 발생하자 규남의 부대로 오고, 규남을 보호하고자 한다. 그러나 규남이 탈주를 시작하자 필사의 추격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종필 감독은 현상을 단순한 '추격자'로만 그리지 않는다. 탈주병 규남을 뒤쫓는 현상의 모습은 마치 꿈을 좇아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현상은 겉으로는 완벽한 장교의 모습이지만, 때때로 자신의 꿈을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때로는 타인을 향한 말이라는 형태를 빌려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이 감독은 현상에 자신을 대입했을 때 "이 사람의 키워드는 뭘까? 현재에 만족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독립영화를 만들던 시절 만났던 한 친구가 자신에게 "난 진짜 네 영화를 보고 싶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 이야기를 누군가가 현상에게 해주길 바랐다. 그래서 선우민(송강)이라는 캐릭터도 만들었다. 이 감독은 "현상이라는 캐릭터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하나로 규정하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입체적인 인물 현상이 탄생했고, 구교환의 정형화되지 않은 연기로 완성됐다.

    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탈주'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무엇을 어떻게 뺄 것인가

     
    '탈주'는 캐릭터와 그들을 둘러싼 여러 은유로 가득하지만, 연출 방식은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뺄셈의 영화'다.
     
    이 감독은 "짧고 명확한 이야기라 보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뺀 만큼 보는 사람이 채울 거라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뺄셈의 영화'가 되기 위해 중요한 건 영화의 중심인 규남과 현상이었다.
     
    '나'로서 살고 싶은데 가진 게 없는 규남이 할 수 있는 건 달리는 것밖에 없다. 규남이 나오는 장면은 이 같은 콘셉트로 작동한다. 반면 추격자라는 위치에 놓인 현상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내면에 담긴 복잡한 마음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었다.
     
    제대로 된 뺄셈을 위해서는 반대로 모든 걸 꽉 채운 후 덜어나가야 했다. 그래서 중편 소설 분량으로 캐릭터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내 배우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이제훈과 구교환 안에서 쌓이고 쌓인 인물들의 서사가 지금의 규남과 현상으로 빚어졌다. 그리고 관객들은 규남과 현상을 보며 내가 관통해 온 시간, 지금의 내가 서 있는 곳을 발견하고 있다.
     
    현상의 끈질긴 추격을 벗어나 바라던 남한에 도착한 규남에게도 현실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토록 바라던 실패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감독이 관객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한 바가 있다. 이 감독은 '감독의 말'을 통해 "이곳에서 의미 없이 사느니 죽더라도 희망을 꿈꾸는 게 인간"이라며 "불안과 공포에 쫓기면서도 희망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매혹적인 악몽을 강렬하게 펼쳐 보이고 싶었어요. 결국 운명처럼 정해진 세상에서 이탈하여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인간의 이야기예요. 그 길의 끝에서 짓는 피투성이 미소가 보고 싶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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