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임금협상 상견례 하는 현대차 노사 대표. 연합뉴스현대자동차 노사의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적으로 테이블에 오른다. 앞서 노사는 만 60세 정년 이후에도 근로자가 원하면 2년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재고용 제도에 잠정 합의했다. 현실화하면 정년은 사실상 만 62세까지 늘어난다.
정년 연장은 그동안 청년층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시선과 비용 부담이 커진다는 사측의 이유로 공론화되지 못한 면이 크다. 하지만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반대로 숙련공의 필요성은 늘어나면서 사회적 논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3만명의 생산직 근로자가 일하는 현대차의 첫 단추가 산업계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이날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의 수용 여부를 묻는 찬반투표를 실시한다. 투표를 통과하면 현대차 노사는 사상 처음으로 6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이루게 된다.
올해 노사의 잠정 합의는 47일 만에 도출됐다. 지난 2020년 40일 이후 4년 만에 가장 짧은 기간이다. 배경에는 사측이 그간 노조의 숙원이었던 정년 연장에 한발 물러서면서 논의의 물꼬를 튼 데 있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사측은 이번 협상에서 기술직 촉탁계약의 기한을 현재 1년에서 만 62세까지 1년 더 늘리기로 합의했다. 촉탁계약은 만 60세 정년을 채운 숙련 기술직 직원을 재고용하는 제도로, 사실상 정년을 만 62세까지 연장한 효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노사는 태스크포스팀(TF)을 만들고 정년 연장 방안을 앞으로도 계속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TF는 사측 5명과 노조 5명 등 모두 10명으로 구성된다. 노조는 TF를 발판 삼아 내년 단체협상에서 정년 연장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그동안 법안 개정과 사회적 공감대가 우선이라며 정년 연장을 반대해온 현대차 사측이 올해 일정 수준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산업계도 촉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업계 선두주자로 산업계에 영향력이 큰 만큼 현대차 노사의 정년 연장 논의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HD현대그룹 조선 3사 노조와 삼성그룹 노조연대·LG유플러스 제2노조 등도 정년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연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년 연장 논의가 힘을 받게 된 기저에는 우리사회의 저출생·고령화가 깔려있다. 지난 2018년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넘으면서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이르면 2026년 초고령사회에 들어설 전망이다. 반면 출생률은 갈수록 떨어져 생산가능인구는 2030년까지 매년 30만명씩, 2040년까지는 매년 50만명씩 줄어들 처지다. 국민연금 수령 연령이 만 65세로 조정돼 정년 퇴직 이후 수년간 소득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도 정년 연장 논의를 점화하는 요소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기업에게도 불안을 가중시킨다. 안정적인 노동력 확보는 기업 경쟁력 측면에서 필수적이어서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숙련공의 기여도가 큰데 기존 근로자가 정년을 맞아 떠나가고 빈 자리를 채울 젊은 인력을 확보할 수 없다면 기업의 존속에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현대차 노사가 기술직 촉탁계약 기한 연장에 공감대를 이룬 이유이기도 하다.
정년 연장 논의는 앞으로도 활발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회원사 124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올해 예상되는 임단협 주요 쟁점으로 정년 연장(28.6%)을 가장 많이 꼽았다.
다만 정년 연장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과 청년층 채용 감소는 풀어야할 숙제다. 재계 관계자는 "저출생·고령화가 심화하는 가운데 정년 연장 논의는 피할 수 없는 의제"라며 "정년 연장 이외에 계속고용과 재고용 등 기업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방식을 고민하면서 청년층 일자리 및 임금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