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의과대학 교육의 질을 평가·인증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입학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의대에 대한 평가 일정에 돌입한 가운데, 대상 의대들은 늘어난 정원을 감당할 교육 여건이 안 된다며 우려하고 있다.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사직한 의대 교수들도 있어 의평원 보고서를 준비하는데 실무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강의실에 아무리 꽉 차게 앉아도 다 못 들어가요. 다른 학과 강의실을 빌려야 할 판이죠."
12일 CBS 노컷뉴스 취재에 따르면,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관계자는 늘어난 의대생을 수용할 여건이 안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충북의대는 기존 정원 49명에서 이번에 76명이 증원돼 2025년 총 125명을 모집한다. 더구나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휴학 중인 의과대학 학생들이 유급되면 175명이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처지다.
충북의대 관계자는 "새 건물은 적어도 3~5년은 지나야 준공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다른 학과 대형 강의실을 빌려서 수업하는 방향으로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다른 학과 강의실 빌려야…"시신 한 구에 15명 붙을 판"
해부 실습을 위해 기증된 시신인 '카데바'도 턱없이 부족하다. 충북의대는 해부학 수업 시간에 현재 학생 8명이 한 조를 꾸려 카데바 1구씩 맡아 총 6구를 쓴다. 2년 뒤인 2027년부터는 학생 125명이 해부학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카데바가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카데바가 부족한 의대가 다른 곳에서 받아 사용하거나 수입하는 등 대안을 제시했지만 의대 교육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충북의대 관계자는 "시신은 연고가 있는 특정 대학의 발전을 위해 기증한 것이다. 다른 대학으로 옮기려면 가족의 동의도 필요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대로면 카데바 한 구에 학생 10~15명씩 붙어야 할 판"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의대 교수들은 증원에 맞는 교원과 관련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지난 5월 전국 30개 의대 소속 교수(10% 이상 증원 대상, 1031명)를 대상으로 증원에 따른 교육 여건에 관련된 설문 조사를 했다.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의대 교수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의대 증원이 이뤄질 경우 입학과 진급에 맞춰 학교 강의실 등 건물이 적절하게 준비될 수 있을지에 78.6%(810명)가 '매우 그렇지 않다', 16.4%(169명)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교원 확보 가능성에 대해서도 85.5%(881명)가 '매우 그렇지 않다', 11.1%(114명)가 '그렇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봤다.
한 지역의대 A 교수는 "지금도 여전히 하드웨어적으로 강의실이나 실습실이 당연히 준비가 안 된 상황"이라며 "소프트웨어적으로는 교수나 조교 인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11월 말 의평원 계획서…"'번아웃' 교수들, 600쪽 보고서 벅차"
의평원은 입학 정원이 10% 이상 늘어난 의대에 대해 평가 일정에 돌입했다. 의평원 오는 11월 말까지 평가 대상 대학으로부터 주요변화 계획서를 접수하고, 서면·방문 평가를 거쳐 내년 2월 평가 결과를 발표한다.
평가 대상은 의대 40곳 중 미증원 8곳과 증원 폭 10% 미만인 2곳(인제대, 연세대 미래캠퍼스)를 제외한 30곳이다.
또 의평원은 학생이 급격히 늘어나는 만큼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평가 기준을 강화하기도 했다. 평가 항목 수를 기존 15개에서 51개로 늘리고, 계획서 제출 기한도 2025년 1월 말에서 오는 11월 말로 앞당겼다. 또 통상 2·4·6년 주기로 하던 인증 평가를 6년간 매년 시행할 계획이다.
평가 대상이 된 의대들은 오는 11월 말까지 제출해야 하는 계획서를 서둘러 준비하고 있지만 막막한 상황이다. 제출하는 계획서를 토대로 내년 실사를 통해 검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전의교협이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증원된 의대 32곳 중 30곳이 자체평가 결과, 정원이 10% 이상 늘어나 의평원의 주요변화평가 대상이 된 의대는 모두 '불인증'으로 봤다.
특히 지역의대에서는 교수의 사직으로 당장 행정 업무를 볼 인력도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한 지역의대 B 교수는 "대학에 따라 보직 교수가 (의정갈등 사태로) 사직해 빈 곳도 있다. 11월까지 내야 할 계획서를 써낼 교수 자체가 없는 것"이라며 "지역의대 교수들은 이미 병원 업무로 '번아웃' 상태인데, 600쪽짜리 보고서를 준비하기에 벅차다"고 토로했다.
다만 정부는 의평원 미인증으로 내년도 신입생 모집에 차질을 빚는 의대가 실제로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구연희 대변인은 "의대가 늘어난 정원으로 인해 의평원 평가에서 미인증 받지 않도록 교육부가 준비하고 있다"며 "의평원은 의대가 인증 조건을 불만족해도 유예 기간을 두도록 하고 있어서 내년 신입생의 국시 응시 자격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도 정부가 의평원 펴가 기준을 낮추는 등 조치를 통해 실제 의대 인가 취소 또는 유예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증원 이후 교육의 질'…"방법 없어, 지역 인력 수도권 쏠릴 것"
황진환 기자의대 교수들은 증원 이후 의대 교육의 질을 제고할 방안에 대해서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B 교수는 "지역의대에서 (증원) 이전의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방법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의대 인력이 수도권으로 쏠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 교수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인력이 결국 어디서 나오겠나. 모두 지역 의료 인력들이 빠져나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A 교수는 "(증원 이후 교육의 질을 유지하려면) 방법은 아주 단순하다. 시설과 인력을 확실히 더 추가하면 된다"면서도 "다만 그렇게 갑자기 (시설과 인력이) 늘어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학생들이 전공 필수 과목을 듣기까지 2년이 남았다며 그동안 준비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옛날 말"이라고 반박했다.
아울러 "이제는 1학년 1학기부터 전공 필수 과목을 듣고 2학년 2학기부터 완전히 본과처럼 교육한다"며 "해부학 실습 과목도 2학년 2학기부터 있다. 이런 준비를 하는데 최소한 3년 이상이 걸린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