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기간을 앞두고 응급실 과부하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응급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60대 남성 의식저하(mental change): 기면(drowsy)
-화단에 벌거벗은 채로 의식저하인 모습으로 발견되어 119 신고됨. 2층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fall down(낙상) 추정, body temperature(체온) 39도, 이외 생체징후 안정(vital stable).'
"119로부터 들은 정보는 이게 전부다. 119가 환자정보를 코디네이터에게 전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장의 상황을 다시 물을 기회는 없다. 환자를 직접 보지 못하고 단편적인 내용만 전해 들었을 때 '외상으로 인한 의식저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한 가지, 고열의 발열이 마음에 걸린다(..) 짧은 응급의학 경험상 발열은 내과적 질환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외상으로 인한 의식저하의 경우, 39도의 고열이 나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편적인 정보들에 대한 수많은 물음표가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119가 현장에서 환자를 이송하기 전까지 어떤 순서로, 어떠한 검사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검사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빨리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검사와 정확한 원인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를 떠올리며 적절한 순서로 배치한다(..) 실질적인 치료가 이루어지는 시점을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 핵심이다."
-<응급실, 우리들의 24시간>(2024) 中 발췌-
중증 많은 권역센터 응급실, '교차점검' 필수지만 "홀로 당직"
지난 5월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과 사직 전공의들이 용산 대통령실을 찾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달한 수기집에서, 전공의 '9328'은 "응급의학과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과"라며 본인의 경험을 이렇게 술회했다. 저자로 이름을 올린 '응급의학과 젊은 의사 54인'은 예측불가 상황의 연속인 응급실을 '방심할 수 없는 곳'이라고 칭했다.
응급실은 의료기관에서 대부분 일과시간으로 제한된 외래진료와 달리 '24시간 온콜(on-call·호출 대기)'이 디폴트(기본값)인 공간이다.
하루종일 가동되지 않는 응급실은 정상이 아니란 뜻이다. 바이탈(vital)'이라 불리는 소위 필수의료의 최전선이지만, 때로 당직의 판단에 환자 생사가 좌우되기에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119구급대로부터 이송환자의 기본 정보를 전달받으면 병원 도착 시 즉각 실시해야 할 검사 및 처치를 결정·수행하는 것부터 건강이상의
근본적 원인을 규명해 담당과 배후진료를 연결하는 것은 물론, 필요 시 마땅한 전원(轉院) 병원을 찾아 무사 이송하는 것까지 모두 응급의학과 의사의 몫이다.
단순 발열 등에도 대형병원으로 직행하는 경증환자가 여전히 많다지만, 상대적으로 중증환자 내원 빈도가 높은 상급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이 '멀티태스킹'의 난이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남궁인 교수가 지난달 23일 본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의사의 뇌는 다섯 개가 기본"이라고 적은 이유다. 남궁 교수는 "인턴 둘을 제외해도 (최소한) 세 명 정도는 (응급의학과 의사가) 필요하다"며 "여기는 서울에서 최고 중환자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곳이다.
한 명이 혼자서 판단하고 결정한 사항은 무조건 한 번은 틀린다"고 말했다. '2개 이상의 뇌'가 교차 점검을 해야 환자에게 치명적인 오류를 잡아낼 수 있는 응급실의 운용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근무인력 결원으로
'없던' 당직도 자원 중인 그는 지금 "정말 혼자"다.
아주대병원 등 응급실 적신호인데 "진료 원활"?…현장 '격앙'
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응급의료기관에서 근무 중인 전문의들 사이에선 지난달 29일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에서 "여러 문제는 있지만 비상진료체계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고 밝힌 발언을 두고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올 2월 의대 증원 발표로 촉발된 의·정(醫政) 사태가 6개월을 넘기며 곳곳마다 응급실 파행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정부의 인식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지방 권역응급의료센터 소속 전문의 A씨) 얘기란 것이다. 부처 실무책임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상황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란 반문을 하는 전문의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앞서 윤 대통령은 임박한 추석 연휴, 코로나19 재유행과 맞물려 응급의료 공백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 "의대 증원을 완강히 거부하는 분들의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또 오히려 질문을 던진 기자를 향해 "의료현장에 (직접) 한 번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남은 의료진의 헌신으로 큰 어려움은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A씨는
"이제는 분노와 절망을 넘어 거의 체념 수준"이라며 "더 이상 정부에 기대할 게 없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 교수 B씨도 "상황이 이 정도면 보건복지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의료 사태와 관련해선 국회도 '눈 뜬 장님'"이라며 "정부 대책에 협조하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이들이 심각하게 바라보는 지표 중 하나는
'주 1회 응급진료 전면중단'을 예고한 아주대병원의 케이스다. 이국종 전 권역외상센터장(現국군대전병원장) 재직 당시 중증외상 분야 치료로 화제를 모은 이 병원은 도 내 9개 권역응급의료센터 중 진료 환자규모와 중증 비율 모두 최다다. 최종치료를 도맡아 온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이 같은 아주대병원이 이달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7시~익일 오전 7시(24시간) 응급실 진료 불가를 명시한 공문을 지난달 30일 일선 소방서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아주대병원 측은 해당 공문을 통해 "본원은 현 의료파행 기간 중에도 권역 내 최다 환자를 치료했으며 고(高)중증 환자를 가장 많이 수용해 진료를 수행하고 있다"면서도 "최근 응급센터 내 전문의 사직으로 인해
소아응급전문의 부족으로 소아응급실을 축소 운영했고, 잇따른 성인응급 전문의의 추가 사직 또한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소방당국의 양해를 구했다.
아주대병원에서 성인 환자를 진료하던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총 14명이었으나, 의정 사태 이후 3명이 차례로 사직했고 남은 11명 중 4명도 사직서를 제출한 상태다. 경기도는 최근 김동연 지사가 격려차 아주대병원 응급실을 찾은 자리에서 10억원을 인건비 포함 '응급실 정상화' 명목으로 긴급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A씨는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적신호'를 보여주는 사례로 진단하며 "병상 축소와 인력 부족 문제로 (많은 응급실이) 실제로 심각한 위기"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수용 가능한 환자 수가 줄며 실질적인 진료능력이 더욱 제한되고 있다"며
"지역 응급의료센터와 의료기관들은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진료 수준이 정해져 있어 권역센터에서 맡던 중증환자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경증과 중증 사이인 중등증 환자는 일부 분산이 가능할 수 있지만 이 또한 기존 업무에 더해지는 부담인 만큼 과부하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강원대병원도 이날부터 응급의료센터 전문의를 충원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야간진료 중단에 들어간다. 당일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성인 환자는 응급실 진료를 받을 수 없고, 주간 진료(오전 9시~오후 6시)만 가능하다. 건국대충주병원 또한 같은 이유로, 평일 오전 9시~오후 9시 외 야간 및 주말·공휴일엔 응급실을 닫는다고 공지했다.
추석 앞두고 '응급실 운영단속'?…"무책임하고 뻔뻔한 정부"
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구급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연합뉴스
추석을 앞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여건 고려 없이, '일단 환자를 받으라'며 강압에 가까운 권고를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응급의학의사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공동으로 낸 입장문에서 강원대병원 등의 사례를 들어
"추석 명절에는 ('뺑뺑이')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용산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24시간 (응급실)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를 통해 연휴기간 일선 병·의원의 '자발적 응급실 운영 참여'를 요청한 사실도 공개하며 "하지만 불응할 경우 현장조사와 고발을 하겠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억지로 응급실 문을 연다고 현 상황에서 환자를 받을 수 있을까"라며 "정부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결정일 뿐"이라고 날을 세웠다.
응급실 의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의료개혁 때문이 아니라 원래 그랬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복지부에 따르면, 의정 사태 이후 현장을 떠난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약 500명에 이른다. 권역·지역 응급의료센터 근무 전문의는 전년 대비 80여 명 늘었지만(1418명→1502명), 사직 현황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한편, 정부는 이날부터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일일브리핑을 진행해 국민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방침이다. 응급실 의료인력과 가용 병상 등 가동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취지다. 이날 오후에는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이 브리퍼로 나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