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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칼베임'에 동네병원 찾은 환자…"큰 불상사 없었다"지만

보건/의료

    추석 '칼베임'에 동네병원 찾은 환자…"큰 불상사 없었다"지만

    '당일 봉합 어려울 수도' 말에 발 동동…관내 2차병원서 적시 처치
    "'이럴 때는 동네 이 병원 가라', 정확히 알려주는 시스템 정착됐으면"
    정부 "추석 응급실 환자, 작년대비 20%↓"…전국적으로 뺑뺑이는 '계속'
    복지장관 "전공의 이탈 전에도 있던 문제"…'의료개혁 당위성' 거듭 강조
    현장선 "응급실 방문 자제, 근본적 해결책 아냐…배후진료 대책 전무" 비판

    정부가 11일부터 2주간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주간'을 운영하기로 한 가운데 서울시내 한 병원입구에 추석연휴 '응급의료센터 정상진료'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황진환 기자정부가 11일부터 2주간 '추석 명절 비상 응급 대응 주간'을 운영하기로 한 가운데 서울시내 한 병원입구에 추석연휴 '응급의료센터 정상진료' 안내문이 설치돼 있다. 황진환 기자
    "추석 전 만나는 사람마다 '(연휴 동안) 절대 아프지 말자'고 했었는데…막상 제가 (응급실에) 실려 가야 할 상황이 되니 머리가 새하얘지는 느낌이었어요.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
     

    손목 베인 추석날, '당일 봉합 어려울 수 있다'는 말에 아찔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60대 A씨는 추석 당일인 지난 17일 밤을 떠올리면 아직도 '십년감수(十年減壽)'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고 했다. 하루를 꼬박 들인 성묘부터 명절음식 한 상 마련까지 이번 추석도 무탈히 지났다며 안도하던 밤 10시쯤 주방을 정리하다가 벌어진 사고였다.
     
    설거지를 돕겠다던 친척이 새로 구입한 부엌칼을 닦은 뒤 칼집에 바로 넣어두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뒷정리에 나선 A씨는 칼날이 손목을 스친 찰나 솟구친 피를 보며 비명을 질렀다. 지혈차 건네받은 수건은 이내 시뻘겋게 물들었다.
     
    "잘 드는 칼이라 고기가 썰리듯 (베인 곳이) 움푹 들어간 것 같다", "족히 몇 센치(cm) 이상은 되는 느낌"이란 A씨의 말에, 아들 B씨는 즉각 119에 신고했다. '(생명이 위급할 정도로) 크게 아프지 않은 사람은 119에 신고하면 안 된다더라' 등의 얘기를 뉴스로 접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구급대 출동이 늦어지면 직접 치료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할 요량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약 15분 만에 나타난 구급대원들은 '병원 상황을 봐야겠지만, 대학병원은 (이송이) 안 될 것'이라고 했다. B씨는 "처음엔 '거동은 되시지 않나', '이 정도론 큰 병원 응급실은 절대 못 갈 것'이라고 하는 말들에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특히 인근 병원 사정에 따라, 당일 밤엔 소독만 하고, 다음날 봉합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에 발을 동동 굴렀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좀 서운하실 수 있는데 119를 굳이 부르시지 않아도 되는 케이스일 수 있어요. 그런데 어머님도 아프시고,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지 그걸 모르시니까 신고하신 거니 저희도 출동을 나온 거죠. 단순히 열상이 있거나 (피부가) 찢어지신 분들은 좀 작은 병원부터 알아봐요."
     
    '요즘은 그런 시기', '24시간 안에만 처치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던 출동 대원의 언뜻 태평한 말에 B씨가 화를 낼 수 없었던 것은 구급차 안에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 때문이었다.
     
    '의사 집단행동으로 인해 병원 선정이 지연될 수 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A씨의 혈압을 재고 전화를 돌려보던 구급대원들은 24시간 정형외과 진료가 가능한 한 관내 종합병원으로 A씨를 이송했다. 대원들은 야간에 몇 번 환자를 옮겨본 곳이라며 '(치료 후) 평가가 괜찮았다'고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엑스레이(X-ray) 촬영 후 신경은 이상이 없다는 판단 아래 당직의사의 봉합이 이뤄지고 나서야 모자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B씨는 CBS노컷뉴스에 "어머니 일처럼 2차 병원에서 충분히 진료가 가능하다면, 다들 왜 불안해 하겠나"라며 "이럴 때는 동네 병원 어디를 가는 게 좋다고 (정확히) 알려주고, 중환자는 지체 없이 큰 병원으로 즉시 갈 수 있도록 잘 분리된 시스템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석 응급실환자, 예년대비 20%↓"라지만…잇따른 '뺑뺑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는 닷새간의 추석 연휴기간 보도된 복수의 '응급실 뺑뺑이' 사례에도 불구하고, 당초 의료계와 언론이 우려한 '응급의료 대란'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필수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적시치료에 어려움을 겪은 경우가 일부 있으나, 대체로 A씨 사례처럼 중증도에 맞는 진료 대응이 이뤄졌다는 취지다.
     
    올해 추석 전국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 수가 지난해 추석에 비해 20% 이상 줄었다는 통계도 내놨다. 보건복지부가 연휴가 시작된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집계한 결과,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하루 평균 2만 7505명으로 작년 추석(3만 9911명), 올해 설(3만 6996명)보다 현저히 감소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8일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추석 연휴 응급실 상황을 평가해 달라는 질의에 "연휴 전 일부에서 우려했던 것과 같이, 의료공백으로 인한 큰 불상사나 큰 혼란은 없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공의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평소보다 의료인력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이 (본 기능에 맞게)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으로 평가한다"고 부연했다.

    특히 대형병원 쏠림을 막고자 정부가 분산에 초점을 맞춘 경증환자는 일평균 1만 6157명으로, 지난해 추석(2만 6003명), 올해 설(2만 3647명)보다 30% 이상 줄어 감소 폭이 더 컸다. 한국형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도구인 케이타스(KTAS) 4~5등급에 해당하는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응급실 방문을 삼간 결과로 풀이된다.

    27가지 중증·응급질환의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도 추석 전인 9월 첫 주 평균(99곳)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87~92곳)을 유지한 것도 유효했다는 게 당국의 분석이다. 전국 411개 응급실 중 세 곳을 뺀 408개소는 연휴 내내 '24시간 정상 가동'됐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경증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등을 찾을 경우 진료비 본인부담분(分)을 인상한 조치에 더해 시민의식에 호소한 '응급실 내원 총량 줄이기'가 궁극적 대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이번 연휴 동안 전국 각지 의료현장에서는 아찔한 장면이 잇따랐다.
     
    앞서 지난 14일 충북 청주에선 양수가 터진 임신 25주차 여성이 병원 75곳으로부터 수용을 거부당해 6시간 만에야 한 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15일엔 광주광역시에서 손가락이 절단된 50대 남성이 관내 의료기관 4곳에서 '수용 불가' 회신을 받고 90여 ㎞ 떨어진 전주 정형외과로 이송돼 수지접합수술을 받았다.
     
    조 장관은 이러한 '응급실 미수용' 문제에 대해 "전공의 이탈 이전에도 있었던 문제"라고 말했다. 더불어 "의료개혁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도 없고 미뤄서도 안 되는 과제"라며 "의료개혁은 그동안 누적되어 온 우리 의료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의대 증원 등 개혁의 당위성을 거듭 강조했다.

    "비상진료 '진행형'인데…'큰 탈 없었다'가 자랑?"


     
    추석 연휴인 1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추석 연휴인 1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장에선 비상진료가 7개월째 장기화된 상황에서 '연휴기간 별탈은 없었다'는 당국의 자평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일산백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응급실 환자 감소는) 다행이라면 다행이랄 수 있지만 정부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며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정상진료체계지, 현재의 '비상진료'가 아니다. 비상진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딱 여기까지란 걸 보여준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어 "최종치료 인프라는 결국 전공의들이 없기 때문에 부족해진 게 아닌가. 그에 대한 대안은 지금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대형병원의 응급실) 이용을 줄인다든가, (환자 부담) 비용을 올리는 것들은 배후진료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정부의 대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것만으로 추석 연휴 응급의료 대란이 없었다고 한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라며 "과도한 '추석 응급실 위기설'로 인해 마치 (이제는) 응급의료가 위기가 아니란 인식이 퍼지지 않을지 정말 걱정스럽다. 응급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전국 180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에서 근무 중인 의사는 1865명으로, 작년 4분기 기준 2300여 명보다 400명 이상 줄었다. 정부는 "같은 기간 동안 전공의가 500명 이상 줄어든 데 따른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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