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보건복지부 산하 한 국립병원에 근무하던 8급 공무원 A씨는 질병 휴직으로 쉬던 중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소위 무(無)허가 겸직이었다. 공무원 신분상 영리목적 업무는 공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허가를 받아야' 겸직이 가능한데, 이 같은 절차는 A씨의 안중에 없었다.
법령 위반은 엉뚱한 곳에서 노출됐다. 택시를 몰던 A씨가 다른 운전자에게 보복운전을 한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게 되면서, 겸직 신고를 하지 않은 공무원이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A씨는 결국 정직 3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았다.
최근 4년간 국가공무원이 허가 없이 '투잡'을 뛰다가 적발된 사례가 약 90건에 이르는 가운데
지난해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겸직 위반'이 발생한 부처는 보건복지부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신고한 내용을 넘어선 겸직 수익을 올리거나, A씨처럼 '아프다'는 이유로 유급인 질병휴직 중 타 직종에 종사하는 행위는 공직자 직업윤리 및 기강 문제로 비화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제출받은 '연도별 국가공무원 겸직 위반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중앙행정기관 공무원이 겸직 신고를 하지 않고 영리활동을 한 사례는 총 86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작년 한 해 동안 적발된 '무허가 투잡'은 37건이었는데, 복지부가 총 9건(24.3%)으로 '1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4년간 누적 기준으로는 경찰청이 28건으로 최다치를 기록했지만, 이 기준을 적용해도 복지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15건)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11건). 상위 세 부처의 위반건수만 도합 전체 '3분의 2'(약 62.8%) 수준이다.
'연도별 국가공무원 겸직위반 현황'(2020~2023).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실 제공복지부의 2020~2023년 겸직위반 현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A씨를 비롯해
겸직 금지의무를 어긴 사례자들은 전원 복지부 소속 국립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9급 공무원인 B씨는 작년에 겸직허가 없이 지인이 운영하는 치킨집에서 일하다가, 덜미를 잡혀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제일 흔한 유형은 겸직 신고 후 허가를 득(得)하지 않고 외부 위원회의 자문위원직 등을 수행하거나, 당초 겸직허가 시 신고한 횟수를 넘겨 영리업무를 수행한 경우들이었다.
사전 허가 없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을 맡는가 하면 '근무시간 외' 외부활동을 하겠다고 보고하고 본래 업무시간을 활용하거나, 본인이 신고한 액수를 넘어선 겸직수익을 수령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 중에는 고위급이라 할 만한 3급 공무원도 절반 가량(11건 중 5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보직순환 없이 장기 재직하는 전문경력관도 1명 있었다.
이들 대부분(82%·11건 중 9건)은
구두주의 후 재심사 또는 사후허가 등 가장 가벼운 경징계에 그쳤다.
국가공무원법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제25조 영리업무의 금지) 등에 따라,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재산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계속적인 영리업무가 금지된다.
법제처 제공공무에 부당한 영향을 끼치거나 국가의 유익과 상반되는 이익을 취하는 일, 또는 정부에 불명예스러운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허가를 받아 일부 겸직은 가능하다. 다만, 직책의 전문성을 살리는 등
공무의 연장선상이 아닌 '겸직 난립'에 대해서는 합리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종태 의원은 "공무원의 전문성을 공익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겸직 등은 종합적으로 상황을 살펴보고 유연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무허가 투잡'과 같이 업무에 지장을 주는 무분별한 겸직은 관련 규정이나 제도에 허점은 없었는지 살펴보고 철저하게 관리·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47개 중앙부처 중 겸업 허가가 가장 많이 승인된 직업은 공공단체 및 학회 등의 임원·위원으로 지난해에만 1504건이 허가됐다. 최근 들어 특히 급증세를 보인 항목은 '임대업'으로, 겸직허가 건수가 지난 2020년 47건→2023년 173건으로 3년 새 약 3.7배 폭증했다.
지난해 겸직허가 최다 부처는 경찰청(541건)이었고, 농촌진흥청(284건), 문화체육관광부(239건), 교육부(209건), 과기부(190건) 등이 뒤를 이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대전 서구갑). 의원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