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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 없는 대화'의 딜레마…또다시 좌초하는 여야의정 협의체

보건/의료

    '조건 없는 대화'의 딜레마…또다시 좌초하는 여야의정 협의체

    의학회·의대협회, 韓 제안 40여 일 만에 화답했지만…도로 '공전' 우려
    정부, 두 단체 요구한 '의대생 휴학 자율승인' 등 거부…전공의는 참여 비토
    "열려 있다"며 의료계에 '조건없는 대화' 요청했지만…정부도 입장변화 '全無'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전공의·의대생들이 보건복지부에 하고 싶은 말이 적힌 메모지를 공개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개혁신당 이주영 의원이 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전공의·의대생들이 보건복지부에 하고 싶은 말이 적힌 메모지를 공개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제안에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가 40여 일 만에 응답하면서 어렵사리 첫 삽을 뜨려 했던 '여·야·의·정 협의체'가 또다시 좌초하는 분위기다. 8개월째 계속되는 의료공백 사태의 '출구'로 주목받았던 협의체가, 핵심 당사자들의 추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공전(空轉) 수순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가장 큰 이유는 올 2월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에 반발해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 및 의대생의 반발 때문이지만, 협의체 출범에 힘을 실은 두 단체가 내건 대화의 '선결조건'을 정부가 수용할 뜻이 없다는 점에서 예정된 난항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의학회 등은 협의체 발족에 앞서 의대생들이 제출한 휴학계가 각 대학의 자율적 의사에 따라 허가돼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또 전공의단체의 주장처럼 '전면 백지화'란 표현까지 쓰진 않았으나, 2025년도 의대 증원도 안건에서 무조건 배제돼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2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2일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가 여·야·의·정 참여 의사를 전격적으로 밝힌 이후 아직 협의체에 들어가기로 가닥을 잡은 의료계 주요 단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두 단체가 "그동안 진행돼 온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고, 올바른 의료를 하겠다는 젊은 의사들의 충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전제한 만큼, 뭐라도 해보겠다는 결단에 관해선 대한의사협회(의협)도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딱 그뿐이었다.
     
    의협은, "국민과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때, 잘못된 정책 결정에 따른 대한민국 의료의 붕괴를 더는 묵과할 수도 없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한 이들에 대해, "참여의도를 이해하고 동의하는 부분이 있지만 의료계 의견에 반(反)하는 논의는 제외할 것을 요청했다"고 선을 그었다. 두 단체가 의료계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또 지난 10일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 등과 의료개혁 관련 공개토론회를 가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상대책위원회 정도를 제외하면, 호의적이라 할 만한 '응원'의 반응도 드물었다.
     
    서울의대 교수비대위는 향후 의사수요를 고려하면 당초 결정된 증원 규모의 2배(연 4천 명)를 늘렸어야 한다는 정부와 현격한 의견 차를 보이면서도, 양측 간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랬던 비대위도 교육부가 '동맹휴학'에 대한 원론적 불허 입장만을 재확인하자, "(정부는) 의대교육이나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 국민의 건강권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염려도 보이지 않고 있다. 매우 참담한 심정"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복귀를 전제한 의대생에 한해서만 휴학 신청을 조건부로 허가해주겠다는 방침이다. 내년 봄학기를 넘긴 학생들은 유급·제적 처리하겠다는 계획도 불변이다.
     
    의학회·의대협회가 당장 협의체에 들어간다 해도 사실상 '반쪽짜리'란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지금은 이들의 참여 여부도 100% 장담하긴 어렵게 된 이유다. '내년도 의대 증원 철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의료계가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서줄 것을 촉구해온 정부 역시 학사운영 등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셈이기 때문이다. 의료계로서는 정부가 강조한 '열린 자세'를 딱히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위-대한응급학회 응급의료 비상사태 간담회에서 박주민 특위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지난달 2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위-대한응급학회 응급의료 비상사태 간담회에서 박주민 특위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종합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점을 들어 "의대협회 이종태 이사장의 경우, 휴학 문제 등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협의체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이게 (정부가 주장하듯) '조건 없는 대화'로 보이진 않는다. 정부가 (좀 더) 유연한 태도를 보여주셔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내년도 의대 증원까지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느냐도 협의체 성사 여부를 가르는 여전한 변수다.
     
    의학회 등의 협의체 참여 발표 직후, "허울뿐인 협의체에 참여할 의향 없다"고 밝힌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가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2025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을 관철하려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위원장은 당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봄에도 전공의들과 학생들은 각각 병원과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7500명 의학 교육은 불가능하다. 2025년 증원부터 철회해야 한다"고 거듭 못 박았다. 박 위원장을 비롯한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한 지난 2월 당시와 동일한 입장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공의들 중에서도 시종 대정부 강경노선을 지켜 온 박 위원장을 두고, '정부나 의협이 '노답'인 건 맞지만 대안이 없는 건 현재 대전협도 마찬가지' 등 일부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전협 비대위를 대체할 만한 규모로 결집된 전공의 세력은 없다는 게 중론이다.
     
    또 사태 이후 주로 온라인으로만 의견을 표명해온 박 위원장의 리더십에 의문을 가진 전공의들도 정부의 의대 증원이 '과학적 근거 없이' 추진됐다는 생각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개문발차라도 여야의정 협의체가 일단 개시되기 위해선, 의대 교수 '10명 중 9명' 이상이 부정적인 '의대생 휴학 불허 행정지도'만이라도 유연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가 최근 전국 40개 의대 교수 3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98.7%는 대학 당국의 휴학 결재를 막는 교육부의 행정지도를 놓고 "대학 자율성을 침해하는 잘못된 조치"라고 답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증원 철회나 책임자(장·차관 등) 사퇴가 어렵다면, 적어도 당국의 개입 없는 '휴학 자율승인'과 함께 (의·정)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데 대한 공식사과는 있어야 할 것"이라며 "정책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의료개혁이 이뤄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야당은 더 나아가, 2025년도 의대 증원도 의제로 열어놔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이 대표 또한 박 위원장과의 면담 후 내년도 의대정원 관련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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