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원 기자국회가 이번 주부터 677조 4천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심사에 나서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시정연설에 불참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의 통화 녹취 공개로 불붙은 공천개입 의혹을 의식한 듯한 행보지만 관련해 정치권의 논란은 거세지는 모양새다.
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은 11년 만에 '총리 대독'으로 이뤄진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현직 대통령은 매년 국회를 방문해 직접 시정연설을 해왔지만 윤 대통령의 불참으로 한덕수 국무총리가 예산안 시정연설을 할 계획이다.
시정연설은 정부가 다음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때 하는 연설을 말한다.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처음 시작한 시정연설은 이명박 정부 때까지 취임 첫해에만 대통령이 직접 했지만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현직 대통령이 매년 직접 연설하며 지난해까지 11년 동안 관례로 이어져왔다.
대통령실의 시정연설 불참 결정은 최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에서 명씨와 윤 대통령과의 통화 녹취를 공개하며 대통령 탄핵이나 임기 단축 개헌을 거론하는 등 공세를 이어가는 데 대한 부담 때문으로 해석된다.
관련해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전날(3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거리로 나서는 상황에서 차분한 시정연설이 되겠느냐"며 "정쟁(政爭)의 한 장면을 연출할 가능성이 크다고 해서 총리가 대독하는 방향으로 잡고 있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같은 날 기자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 꼭 참석해 국민 앞에서 나라 예산을 어떻게 할지 말하고 책임을 미루지 말고 직접 명씨 관련 뿐 아니라 모든 의혹에 대해 솔직하고 명백하게 밝히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했던 윤석열 대통령. 윤창원 기자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국회 개원식에도 "특검과 탄핵을 남발하는 국회를 먼저 정상화하라"며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으로서 불참한 바 있어 비판이 가열되는 모양새다. 민주당 강유정 원내대변인은 3일 국회 브리핑에서 "개원식도 오기 싫고 시정연설도 하기 싫다니, 대통령 자리가 장난이냐"라며 "피한다고 능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예산안 시정연설에 이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는 △7~8일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종합정책질의 △11~12일 경제부처 부별 심사 △13~14일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를 진행한다. 18일부터 예산의 증·감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예산소위)를 가동하고 29일 전체회의에선 내년도 예산안 의결을 시도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야 대립이 심해지면서 올해도 예산안 법정 처리 기한(12월 2일)을 넘길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