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U라는 대학 이니셜 뒤로 본관 건물이 보인다. 이재기 기자 조용하던 대학가가 윤석열 대통령의 뜬금없는 계엄령 선포로 술렁이고 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상황과 줄어드는 일자리, 좁아지는 취업문에 힘겨워 하는 대학생들은 사회 이슈로 눈을 돌릴 틈이 없다.
학교내 도서관에서 스터디카페에서 취업준비에 바쁜 것이 요즘 대학생들의 일상이다. 특히나 서울수도권에 비해 취업문이 더욱 좁은 지방대생들은 일자리 찾기에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더더욱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고 그러다 보니 대학 캠퍼스는 고요하다.
20세기 중반 이후 한때 청년학생들이 군부독재 타도의 선봉에 섰던 시절과는 너무나 대비되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대구와 경북지역 인재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경북대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박정희 군사독재에 항거하다 인혁당사건에 연루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여정남 이재문열사로부터 80년대 반독재 투쟁과 학원민주화 투쟁에서 지역의 구심점으로 작용했던 내력이 있지만 민주화와 개혁을 위한 참여의 흔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이 학교는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생조직과 사회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의 그룹이 분리돼 있다. 서로간 교류나 접촉도 없다. 총학생회는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 자제한 채 학생들의 실질적인 권리와 직결돼 있는 '제대로 수업받을 권리'나 '대동제' 같은 학교내 이슈대응에 집중하고 있다.
세계가 인정할 정도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무르익은 뒤 나타난 대학가의 변화 가운데 하나이다. 어찌보면 본분에 충실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대학 본연의 참모습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난데없이 계엄령을 발표한 뒤 대학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 대학의 학생 A씨는 '이번주에 발표된 계엄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불법이잖아요"라고 즉답을 내놨다. 그동안 사회이슈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총학생회는 4일 13개 단과대 학생회와 연명으로 윤석열 규탄 성명을 내놨다.
학생회는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이유로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은 총과 칼을 앞세운 통제였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전공의를 처단하겠다는 포고내용과 관련해서 "토론하지 않는 대통령은 인정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비상계엄을 두고 헌법과 법률을 어긴 불법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고 국회로 군병력을 투입해 헌정질서에 상처를 입히고도 여당지도부와 회동에서 '잘못이 없다"는 취지로 대통령이 말한 것으로 알려지자 지식인 집단인 교수들 사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퇴진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경북대 비상시국회의 교수학생들이 학교내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이재기 기자 이 학교 교수 교직원 학생들로 구성된 비상시국회의는 6일에도 집회를 갖고 "헌정을 유린하고 내란을 시도한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집회는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계속될 조짐이다.
사회 저변에서 확산되는 반윤정서는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4일 성인 5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비상계엄과 관련, 윤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73.6%였고 보수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대구경북에서도 66.2%가 찬성했다.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 지역의 시민들도 계엄파동에 대해 놀라워 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과거와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계엄령 이전에는 이런 저런 정치적 이슈가 발생하거나 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쳐도 여권에 대한 애정을 담아 국정추진의 발목을 잡는다고 야당을 비판했지만 지금은 '나라가 혼란스워질까 걱정이다'고 한다.
과거 처럼 대놓고 윤 대통령을 편드는 사람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계엄령은 기폭제였을 뿐 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이 정권에 대한 지지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건 오래전이다. 집권초 시작된 사정드라이브가 무위로 돌아가고 인사편중과 연구예산삭감에 의료대란, 경제난이 겹치면서 서서히 민심이 돌아서기 시작한 건 지난 총선에서 입증이 됐다.
의회 다수를 기반으로 한 야당의 폭주가 불만이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된다. 법령이 정한 요건에도 맞지 않는 계엄령을 발동하고 국회에 군대를 투입하는 건 헌법수호자인 대통령이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을 불안속으로 몰아넣고 세계를 놀라게 한 뒤에도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주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학업에만 전념하던 학생들까지 대통령 퇴진을 외치고 나섰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