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2.3 내란사태' 수사에 나선 수사기관의 갈등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전날(9일) 각각 브리핑을 열고 자신들이 수사의 적임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지난 8일 검찰이 브리핑한 지 하루 만에 곧바로 앞다퉈 입장 발표에 나선 것이다. 검찰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 이번 사태와 관련한 첫 신병 확보를 시도하며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는 전날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에게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을 적용했다.
지난 6일 구성된 특수본은 전날까지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과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이상현 1공수특전여단장, 김창학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 등을 불러 조사했다. 방첩사령부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사무실·주거지 등도 압수수색하며 군 관계자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시도 중이다.
검사 20명과 검찰수사관 30여명, 군검사 등 군 파견 인력 12명 등을 합해 62명에 달하는 '매머드급' 특수본이 김 전 장관과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혐의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공수처 "尹, 출국금지"…경찰 "尹체포 검토"
이재승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9일 오전 경기도 과천 공수처에서 비상계엄 관련 사건 이첩 요구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이런 가운데 공수처는 검찰과 경찰에 윤 대통령 내란 혐의 관련 수사를 중지하고 사건 이첩을 요구했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전날 오전 브리핑을 통해 "공수처는 검·경이 수사 대상자들과의 관계에 있어 공정성 논란이 있는 점, 사건 수사가 초기인 점 등을 고려해 이첩요구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검찰 출신이라는 점과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연루된 만큼 검찰과 경찰 수사 신뢰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공수처는 법무부나 행정안전부에 각각 속해 있는 검찰이나 경찰과 달리 독립기관으로 '외풍(外風)' 없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검·경이 사건을 이첩해야 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국수본에서 12·3 계엄 사태 수사 상황 관련 첫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여기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도 비슷한 시각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의 내란 혐의 수사의 적임자는 경찰이라고 주장했다.
우종수 국수본부장은 생중계 브리핑을 통해 "국수본은 내란죄 수사의 주체로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 법과 원칙에 따라 한 줌 의혹도 없이 철저히 수사할 것을 국민께 약속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12.3 내란사태 수사의 속도를 올리며 치고 나가는 형국 속에 경찰과 공수처도 저마다 수사의 적임자를 자처하며 경쟁하는 모양새다. 오 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수사관들에게 (윤 대통령에 대한) 출국금지를 지휘했다"고 말했다. 이후 법무부는 공수처의 출국금지 신청을 승인해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이 출국금지가 되는 신세가 됐다.
여기에 국수본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요건에 맞으면 (윤 대통령을) 긴급체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긴급체포는 일정 요건이 있고 요건에 해당하는지 검토해 봐야 한다'는 원론적인 취지라고 추가 설명했다.
공수처와 국수본이 수사 초기부터 윤 대통령을 겨냥해 강도 높은 발언을 함으로써 수사의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라는 반응도 나온다.
기관 충돌에 '영장' 반려도…컨트롤타워는 부재중
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9일 오전부터 경기도 과천 소재 국군방첩사령부 등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국군방첩사령부 앞에서 근무중인 장병. 연합뉴스
수사기관 간 기싸움이 실제 수사의 걸림돌로 드러나는 모양새도 연출됐다. 경찰은 지난 7일 오후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 단계에서 반려됐다. 이후 검찰 특수본이 전날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자 경찰 내부에서는 불만이 쏟아지는 분위기다.
반대로 검찰은 지난 6일 경찰에 합동수사본부 구성을 제안했지만, 경찰 측은 '내란죄 수사 권한은 경찰에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기관의 충돌은 수사의 정당성에 조금씩 흠결이 있다는 점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 있다. 내란죄는 검찰의 직접 수사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검찰은 직접 수사할 수 있는 윤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이 있는 만큼 내란 혐의도 당연히 수사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경찰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나 곽종근 전 사령관 등 군에 대한 직접 수사권이 없다는 점이 한계다. 하지만 경찰은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 대한 내란 혐의를 수사하면서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도 병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대통령과 국무위원, 군 장성 등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공수처는 검찰, 경찰과 달리 자유롭지만, 조직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수사 경험이 부족한 것이 약점이다. 공수처는 검사 8명과 수사관 20명 등을 투입해 '비상계엄TF'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공수처 인력 전원을 투입한 상태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에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수사기관 간 수사 주도권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혼선을 정리할 기관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대형 사건, 사고가 발생할 경우 통상 민정수석실에서 수사기관 사이 교통정리에 나서겠지만, 이번 내란 사태는 대통령이 직접 연루된 만큼 개입하기 곤란하다. 또한 현재 대통령실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정진석 비서실장을 비롯한 모든 수석들은 지난 4일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