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앤드루 왕자. 연합뉴스중국과 영국이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영국 앤드루 왕자가 스파이로 의심받고 있는 한 중국인 사업가와 가까이 지낸 사실이 드러나 양국 관계 개선 흐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18일 영국 공영방송 BBC와 일간 더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은 왕실 소식통을 인용해 찰스 3세 국왕의 동생인 앤드루 왕자가 오는 25일 크리스마스 당일 샌드링엄 영지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왕실 구성원들은 매년 크리스마스에 샌드링엄에 집결해 성탄을 축하하고 이는 영국은 물론 전세계 미디어에 소개되는데 국왕의 동생이 이런 왕실의 주요 행사에 불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앤드루 왕자의 왕실 행사 불참은 그가 최근 불거진 중국 스파이 논란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발단은 영국 국내정보국(MI5)이 한 중국인 사업가가 중국 공산당 당원으로 당내 중앙통일전선공작부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영국 내무부가 그의 입국을 금지하면서 부터다.
이에 이 중국인 사업가는 영국 정부를 상대로 입국 금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결국 패소했고 이 과정에서 그가 앤드루 왕자와 가깝게 지낸 사실이 드러났다.
이 중국인은 지난 2021년 11월 대테러법에 따라 국경에서 붙잡힌 적이 있는데 이때 영국 안보당국이 그의 휴대전화를 들여다본 결과 앤드루 왕자와 가까운 관계임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발견됐다.
이 중국인은 앤드루 왕자의 생일파티에 초대받는가 하면 중국에서 앤드루 왕자의 대리인으로서 투자자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승인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앤드루 왕자는 지난 2019년 미국의 억만장자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연루된 추문으로 왕실의 모든 업무에서 손을 뗀바 있는데 이 중국인은 이런 그의 다급한 상황을 이용해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법원은 최근 그동안 'H6'라는 가명으로만 알려진 이 중국인 사업가의 실명이 양텅보(50)라고 보도해도 된다고 허용했다. 양 씨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신원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씨는 지난 16일 성명을 통해 "아무런 잘못되거나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면서 "나를 스파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영국 의회를 중심으로 양 씨와 중국에 대한 공세가 더욱 강화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대중국 강경파인 이언 던컨 스미스 전 보수당 대표는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영국에는 그와 같은 사람(스파이)이 많다"며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는 노동당 정부를 향해 "중국에 대해 매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중국 당국은 이를 '정치적인 공세'로 정의하고 반발하고 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고발은 무척 황당하다"고 말했다.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도 17일 성명을 내고 "우리는 영국 측이 즉시 중국에 대한 정치적 조작을 중단하고, 양국간 정상적인 인사 교류를 훼손하는 것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몇몇 영국 의원들이 반중을 외치면서 자신들의 중국에 대한 왜곡된 사고방식과 오만함, 뻔뻔함을 온전히 드러냈을 뿐"이라고 맹비난했다.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키어 스타머 총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스타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우리는 물론 중국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해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접근 방식은 기후변화와 같이 협력해야 할 부분에서 협력하고 맞서야 할 부분에서는 맞서는 것"이라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는데 그쳤다.
스타머 총리는 지난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계기로 영국 총리로서는 지난 2018년 2월 이후 6년 8개월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양국관계는 지난 2020년 7월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과 2022년 영국 공공기관에 대한 중국의 사이버 공격 의혹 등으로 최근까지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지만 스타머 총리 집권 이후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