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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전남

    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편집자 주

    역대급 폭염과 폭우 앞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후위기'를 실감하는 것 밖에는. 다만 다행인 건 기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것 만큼 기후위기를 '네 일'이 아닌 '내 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올 여름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외침 속에 지역 곳곳에서도 기후위기에 응답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발걸음이 늘어나고 있다. 전남CBS는 기후위기를 향한 냉소와 포기를 넘어, 한걸음의 작은 실천을 하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아 기후행동이 가진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시민들⑥]
    기후위기 시대, 자급자족 농사로 배우는 생태적 삶
    학생들, 직접 기른 배추로 김장하며 자연과 함께 성장
    냉난방 시설 없는 생활…자연에 순응하는 지속 가능한 삶
    나 자신, 우주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게 궁극적 목표

    지난 5일 사랑어린학교에서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고 있다. 박사라 기자 지난 5일 사랑어린학교에서 학생들과 학부모, 교사들이 함께 모여 김장을 담그고 있다. 박사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올 여름 전기세 5만 원…지구를 위한 응답이에요"
    ② "기후위기, 혼자 아닌 함께"…순천생태학교 '첫 발'
    ③ "이렇게 하면 바뀌겠죠" 효천고 기후환경 동아리 '센트럴'
    ④  뚜벅이 환경공학자의 '자동차와 헤어질 결심'
    ⑤ "지구를 향한 작은 발걸음, 순천에서도 울리다"
    ⑥  냉난방 없이도 가능한 삶, 순천 사랑어린학교가 살아가는 법
    (계속)

    기후위기의 시대, 농사는 단순히 식탁을 채우는 일을 넘어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길을 배우는 과정이 되고 있다. 이러한 철학을 실천하며 조화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곳이 있다. 바로 전남 순천에 위치한 '사랑어린학교'다.

    지난 5일 순천시 해룡면 농주리에 자리한 사랑어린학교를 찾았다. 이날은 전교생이 함께 김장을 하는 날이었다. 학생, 교사, 학부모가 학교 식당에 모여 분주히 김치를 담갔다. 이 과정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랑어린학교의 철학과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든 특별한시간이었다.
     
    김장에 사용된 배추 100포기와 양파, 대파, 생강 등 대부분의 재료는 학생들이 학교 텃밭에서 직접 키운 것이다. 잡초를 뽑고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작물을 돌보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자연의 섭리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배추에 속을 채우던 박재민(14)군은 "처음에는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1년 전 내가 심은 배추로 만든 김치를 먹으니 정말 뿌듯하다"며 "친구들과 물을 주며 장난치던 시간도 좋은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수확이 어느 정도 끝난 학교 텃밭의 모습. 박사라 기자 수확이 어느 정도 끝난 학교 텃밭의 모습. 박사라 기자 
    2003년에 문을 연 사랑어린학교는 전남도교육청이 지정한 대안교육기관으로, 초·중등 9학년제를 운영하고 있다. 초·중등 과정(24명), 그리고 1년의 고등과정인 사랑어린마을 인생학교(3명)까지 포함해 총 27명이 재학 중이다. 이 학교는 '함께 어울려 놀며 성장하는 집'을 목표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다.
     
    특히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으며 자연의 섭리를 배워가는 과정은 이 학교 교육의 핵심이다. 매주 금요일 순환적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 한옥현씨의 지도 아래 농사 수업을 진행하며 작물이 자라는 원리를 배운다.
     
    학교 앞에는 다양한 농작물이 자라는 텃밭이 있고, 운동장 한편에는 닭장도 자리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렇게 직접 키운 농작물이나 지역 농부들이 재배한 식재료를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는다.
     
    김민해 사랑어린마을공동체 촌장은 "기후위기 시대에는 무엇보다 먹거리 문제가 핵심"이라며 "학생들이 직접 농사를 짓고 자신이 먹을 음식을 키우는 과정을 통해 땅과 자연의 순환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농사를 짓는 논과 밭은 단순히 식량을 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온도를 낮추고 생태계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숲과 함께 논과 밭은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열쇠와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이곳에서는 인간이 지난 세기 동안 만들어온 잘못된 삶의 방식을 되돌아보며 문명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며 "기후위기를 의식적으로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그 문제를 삶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사랑어린학교 한 학생이 쌀뜨물(첫 번째 대야)과 맑은 물을 사용해 설거지를 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사랑어린학교 한 학생이 쌀뜨물(첫 번째 대야)과 맑은 물을 사용해 설거지를 하고 있다. 박사라 기자 
    이들은 기후위기 시대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다고 말했다. 20년 전부터 환경친화적인 삶이 이미 이들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어린학교는 환경친화적인 삶을 실천하며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가르친다. 학교에는 냉난방 시설이 거의 없으며, 여름에는 선풍기를, 겨울에는 옷을 겹쳐 입는다.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는 식사 방식까지 이곳의 삶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6년째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박선민(16)양은 "선풍기와 옷으로 더위와 추위를 견디면서도 크게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다"며 "이런 생활이 지구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뿌듯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온 학부모이자 교사인 박대환 씨는 "자연의 변화에 거스르기보다 그에 잘 맞춰가는 인간의 지혜로운 모습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지난 5월 모내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 사랑어린학교 제공 지난 5월 모내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 사랑어린학교 제공 김상숙 교장이 운동장 한쪽에 자리한 닭장을 가리키고 있다. 박사라 기자 김상숙 교장이 운동장 한쪽에 자리한 닭장을 가리키고 있다. 박사라 기자 
    사랑어린학교는 자신과 자연, 그리고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삶을 목표로 한다. 이는 자연과의 공존을 바탕으로 한 '생태적 삶'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김상숙 교장은 "우리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존중하며 각자의 길을 찾도록 돕는 것"이라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공동체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익히며, 궁극적으로 우주와 조화를 이루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기후위기를 별도로 해결하려 애쓸 필요 없이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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