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29일 무안국제공항 사고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수습작업을 하고 있다. 무안(전남)=황진환 기자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들의 신원 확인이 더디게 이뤄지면서 유가족들이 애를 태운 가운데, 참사 진상 규명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사고 당시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블랙박스의 외형이 일부 훼손된 점도 초기 조사의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버드스트라이크(조류 충돌) 이외에도 다양한 인재(人災)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완전한 참사 수습까지는 '첩첩산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딘 신원 확인…애 태우는 가족들
31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당국은 참사 이틀째인 전날 오후 8시까지도 희생자 신원 확인을 완료하지 못했다. 확인된 이들은 희생자 179명 중 164명이다. 나머지 15명은 DNA 분석 등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낙 큰 폭발이 있었던 터라 당국은 희생자들의 신원 파악에 유독 어려움을 겪었다. 전남경찰청 등에 따르면 희생자 179명 가운데 비교적 상태가 온전한 시신은 5구에 그쳤다.
희생자 90명의 시신은 이르면 이날 유가족에게 인도될 것으로 보인다. 유가족은 검시 절차가 완료된 희생자 90명의 명단을 당국으로부터 넘겨 받기로 했다. 검시는 시신 인도 전 마지막 확인 절차다. 시신이 인도되면 유가족은 곧바로 장례를 치르거나, 합동 장례를 위해 임시 안치할 수 있다.
기체 충격, 원인 규명 걸림돌 되나…블랙박스 외관 훼손
사고 당시 기체에 가해진 큰 충격은 신원 확인 뿐 아니라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초기 조사에도 걸림돌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참사 당일인 29일 사고 여객기에 탑재된 비행자료기록장치(FDR)와 조종실음성기록장치(CRV)를 확보했지만, 비행자료기록장치 외관이 훼손되면서 내부에 저장된 데이터 등을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추출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항철위는 해당 장치들을 김포공항 시험분석센터로 이송해 데이터 추출 가능 여부 등을 판단하고 있다.
두 장치는 비행기 내 '블랙박스'로 불리며 참사 당시 여객기가 랜딩기어 없이 급하게 착륙을 시도해야만 했던 참사 원인을 규명하는데 핵심 증거로 꼽힌다. 여객기 조종사가 사고 직전 관제탑과 교신하면서 '버드 스트라이크'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조류 충돌이 기체 결함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라는 견해에 더욱 힘이 실리고는 있지만, 당국은 일단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조류 충돌 뿐 아니라 애초 엔진이나 랜딩기어 작동 장치에 이상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여러 장치 이력을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9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진은 30일 서울 강서구 제주항공 서울지사 모습. 황진환 기자한국항공대학 장조원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엔진 수명은 운영시간에 따라 달라진다"며 "여객기가 이륙하기 전에 간단하게 정비받는 것 말고도 어느 제조사의 엔진인지, 언제 만들어졌고, 어떻게 사용됐는지 등 전체적인 기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 영상을 보면) 속도를 늦춰주는 랜딩기어와 플랩(고양력장치)이 내려와 있지 않다"며 "그러니까 유체 압력으로 작동하는 유압(하이드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는 전원이 꺼졌다거나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조사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재(人災)' 가능성도…항공안전법∙중대재해법 위반 여부 조사
국토교통부는 여객기 운행사인 제주항공의 항공안전법 위반 여부에 대해 조사한 뒤 경찰 등과 중대재해처벌법 여부도 들여다볼 방침이다. 수사를 통해 여객기 정비 작업 부실 등 사측의 과실이 드러날 경우 이번 제주항공 참사는 인재(人災)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 상의 결함이 원인이 돼 발생한 재해로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또는 △동일한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10명 이상 발생 또는 △동일한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항공법 전문가인 법무법인 가원의 오세철 변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이해관계자는 세 주체다. 항공기 제조사 또는 엔진 제조사, 항공기 운영사인 제주항공, 한국공항공사"라며 "비행기록장치와 음성기록장치를 봐서 (사고 당시)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부터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제주공항의 항공안전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려면 항공사의 사전 관리∙감독 매뉴얼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항공사는 라인 정비 등을 매뉴얼 대로 하지 않았다면 항공안전법에 따라 책임을 질 수 있다"며 "객실 승무원이나 조종사의 휴식 시간 준수 등을 했는지, 정비 인력(의 업무량을) 과도하게 배당했는지 등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