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이 선포된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에서 진입하려는 계엄군과 이를 막는 국회 관계자들이 충돌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집단학살, 국가적 폭력에 가담한 이들은 재판 과정에서 하나같이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정말 명령에 복종했을 뿐일까?
책 '명령에 따랐을 뿐!?: 복종하는 뇌, 저항하는 뇌'는 인지신경과학자인 에밀리 A. 캐스파가 권위에 복종하는 인간 행동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명령에 따르는 이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인지신경학적 과정을 밝힌 책이다.
저자는 복종의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자신의 연구들과 함께 방대한 사회심리학 및 인지신경과학 자료를 분석해 집단학살과 집단 폭력 사태에 대한 종합적 이해를 제시한다.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신은 독일이라는 "기계의 작은 톱니바퀴 이에 불과했다"며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을 보고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악의 평범성' 개념은 선한 사람들이 스스로 악한 의도를 품지 않더라도 당연하고 평범하다고 여기며 행하는 일들 중 무엇인가는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아이히만은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 윤리적 주체로서 사유하지 못한 무능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봤다. '악의 평범성' 개념은 당시 아이히만과 전범들에게 면죄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이제 모든 이들이 전체주의 체제에서 손쉽게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아시아 제공 저자는 "어떤 지도자는 자신이 이끄는 사회적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며, 어떤 지도자는 강력한 이익 집단과 로비스트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압력을 느끼기도 한다"며 "어떤 지도자는 자신이 다루어야 할 문제에 이해가 부족해 시민들에게 장기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 지도자는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는 자기 조절 메커니즘을 이용해 양심에 거리낌 없이 위법 행위를 저지를 수 있으며 도덕적 이탈은 자기 행동을 재구성해 그것이 덜 해로운 것처럼 보거나, 타인에게 미치는 괴로움에 대한 인식을 줄이거나,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19일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 서부지법에 진입하며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시위대는 서부지법 창문과 출입구를 깨부수고 진입해 집기와 시설을 파괴하는 등 집단 폭동을 일으켰다. 유튜브 락TV 캡처대표적인 명령 이행 집단인 군인에 대해서도 저자는 "군인은 불법적인 명령은 거부해야 하지만, 군사법원에 기소되는 것을 피하려면 부도덕한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군인들은 종종 자신의 도덕적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야 하는 매우 힘든 임무에 직면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직무가 주어진 명령에 따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책에서 저자는 명령에 저항하는 이들에게서 일어나는 신경학적 변화를 연구하며 마주친 특별한 곤란을 고백한다.
불복종하는 이들의 뇌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강압적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가 있어야 하지만 불복종률이 너무 낮아 실험 설계를 계속해서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한다. 결과적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뇌에서 일어나는 책임감과 공감 능력, 죄책감의 감소 결과는 에밀리 캐스파의 연구를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과학적 해답으로 느껴지게 한다.
친위 쿠데타로 불리는 계엄 12·3 내란사태와 대통령 탄핵, 1·19 서부지법 폭동사태 등으로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에밀리 A. 캐스파 지음 | 이성민 옮김 | 동아시아 | 38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