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 선생. 충남대 제공"초등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평생을 기구하게 살며 모아온 이 재산을 고향의 국립대학교에 기부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만 할 수 있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등 격동의 삶을 살며 자수성가한 미수(米壽, 88세)의 노인이 자신이 평생 일군 4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고향에 위치한 국립대학교인 충남대학교에 기부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에 거주 중인 윤근 선생(여, 1937년생)은 19일 충남대학교를 방문해 김정겸 총장에게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40억원 상당의 본인 소유 건물을 기부했다.
충남대에 따르면, 윤 선생은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등 격동의 시대를 겪으며 자수성가한 인물로, 평생을 힘들게 일하며 모은 재산을 고향의 학생들을 돕기 위해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고향은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서울과 고향 청양을 오가며 녹록치 않던 삶을 살던 그는 30대 중반 '부산은 서울보다 일자리도 많고 따뜻해서 그나마 살기 나을 것'이란 이웃의 말만 듣고 단돈 500원을 들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강인한 생활력 덕분에 차곡차곡 돈을 모아 10년 만에 부산 영도 남항 인근에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2층짜리 '동남여관'을 인수하며 숙박업에 뛰어들었다.
타향살이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고향은 언제나 그리웠다. 경상도 사투리 속, 충청도 사투리가 섞여 들리기라도 하면 쫓아가 고향을 묻기도 하고, 영도에 남항대교가 건립되던 시기에 여관에서 묵던 충청도 출신 노동자들에게는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퍼줬다고 한다.
당시 호황을 누리던 부산 경기와 함께 몸에 밴 부지런함, 충청도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여관은 날로 번창했고 리모델링을 거쳐 1995년 같은 자리에 6층 규모의 새 건물을 지었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하며 스스로 일궈 온 인생을 모두 보상받은 느낌이었다.
이 무렵 고향으로부터 전해진 '김밥 할머니' 정심화 이복순 여사의 기부와 별세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반드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때가 되면 고향의 국립대인 충남대에 기부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30년 동안 자신만의 사업을 꾸려 왔고, 동남여관(동남파크) 윤근 사장은 영도 일대에서 자수성가한 인물로 유명한 인사가 됐다. 현재도 여관 건물 맨 꼭대기 층에 거주하고 있다.
윤근 선생은 88세를 맞은 2025년, 자신의 현재와 역사가 담긴 동남여관을 충남대에 기부하기로 했다.
윤근 선생은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먹고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했어요. 동남여관에는 저의 인생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35년 전 김밥 할머니가 충남대를 위해 전 재산을 기부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품고 있었던 일을 이제야 이룰 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충남대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에만 집중해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훌륭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고 말했다.
김정겸 총장은 "윤근 선생님의 인생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역사 그 자체"라며 "수 십년 동안 고향을 떠나 계신 동안에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는 말씀에 감동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생님의 과거와 현재가 담긴 부동산을 기부하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선생님 고향의 국립대인 충남대 학생들이 공부에만 집중하기를 바란다는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충남대 발전기금재단은 윤근 선생으로부터 기부받은 4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교육시설, 수련원 등 다각도의 활용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