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티빙 애니메이션 시리즈 '테러범'은 의도치 않게 테러리스트가 된 고등학생 민정우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미래의 불행을 감지하는 '보랏빛'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그는 초능력을 숨긴 채 조력자이자 전 러시아 마피아 출신인 릴리아와 함께 살아간다. 티빙 제공집념이었다. 작화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치면 과감히 전량 회수해 재작업했다. 국산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거쳐 간 스태프만 총 200여 명.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하는 데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티빙 애니메이션 시리즈 '테러맨'을 기획·제작한 이종혁 PD는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티빙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제작 과정을 떠올리며 이같이 밝혔다.
"작화 난도가 높아 결과물이 기대 수준까지 못 미치면 재작업했죠. 손으로 직접 그리다 보니 제작 기간이 길어졌어요."
이 PD는 "작업 기간이 길어 중간에 다른 사정으로 나가신 분들도 많았고 일부 스태프들도 교체됐다"며 "한 외주사 감독님은 투병 중에도 꼭 하고 싶다며 작업을 이어갔지만, 후에 건강이 좋지 않아 그만두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원작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최대한 원작의 흐름을 따라가려고 했다"며 "인물의 섬세한 감정과 정서를 유지하며 애니메이션에 맞는 문법으로 약간의 각색을 거쳤다"고 덧붙였다.
작품 기획 논의는 지난 2021년 CJ ENM과 와이랩의 협의로 시작됐고, 이듬해인 2022년에 본격화됐다. 이 PD는 "불행을 감지하는 다크 히어로의 독특한 설정과 슈퍼스트링 세계관의 확장 가능성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최적화 됐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광안대교 신 보라색 잔상 애니메이션적으로 새롭게 표현했죠"
이종혁 PD는 인상 깊었던 반응에 대해 "이 정도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이 나와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봤다"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밝혔다. 기억에 남는 대사로는 8회에서 민정우와 김민혁이 함께 욕설을 내뱉는 장면을 꼽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겠다는 감정이 담긴 장면이라 후련하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티빙 제공시각적 연출과 색채 대비에도 공을 들였다. 이 PD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른 정우의 상반된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며 "초반 일부 장면의 배경을 희미하게 처리해 시선을 캐릭터에 집중시키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부 장면에 데포르메(대상을 목적에 따라 축소·과장한 기법) 방식을 사용한 배경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톤이 무거운 작품이라 원작과 같이 완급 조절을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1회 초반 부산의 광안대교 신을 공들인 장면으로 꼽았다.
"작품의 톤과 액션 스타일을 한 번에 보여주며 시선을 잡아야 하는 구간이라 많은 시간이 걸렸죠. 테러맨이 질주하며 총알을 피할 때 보라색 잔상이 총알에 맞고 뒤로 떨어지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적으로 새롭게 표현한 부분이라 기억에 남아요."작품에 담긴 로케이션 묘사도 세심하게 준비했다. 제작진은 서울의 한강과 마포구, 경기도 안양역 등 실제 장소를 구현하기 위해 현장 자료 조사를 많이 했다고 한다. 작화를 맡은 우메하라 타카히로 감독도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대의 교통량과 행인의 모습을 직접 조사했다고 밝혔다.
음악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오프닝 곡은 '테러맨'의 거칠고 터프한 분위기를 의도해 제로베이스원 멤버 김태래가 녹음했고, 엔딩은 섬세한 음색을 살리기 위해 권진아가 맡아 완성도를 더했다.
이 PD는 "음악 감독님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참고하며 작업했다"며 "회차가 진행될수록 음악이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7년 기다린 '케데헌'…단기간 지원 그치지 않은 제작 환경 필요"
이종혁 PD는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로 릴리아를 언급했다. 그는 "정우를 히어로로 성장시키는 매력적인 인물"이라며 "원작에서는 릴리아 과거를 다룬 시즌2가 명작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러닝타임을 30분 안팎으로 설정한 배경에 대해서는 "사건 전개가 빠르다 보니 부담 없이 한 호흡에 끝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종민 기자'테러맨'에 이경태·장미·엄상현 등 전문 성우들이 참여했지만, 더빙 연출을 두고 호불호 반응이 이어지기도 했다.
"원작 팬들이 머릿속에 갖고 있던 목소리 이미지와 성우의 음색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캐스팅은 캐릭터의 내면에 있는 처절함과 불안함을 설득력 있게 소화 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진행했죠."
이어 "사실 일본 작품이 한국에 들어올 경우 성우들은 원작과 최대한 비슷한 소리를 내려고 하는데 이번 작품은 창작 애니메이션이다 보니 아무 소리 없는 영상을 드렸다"며 "성우 분들이 스스로 연구하며 뒤로 갈수록 더 잘해주셨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호불호 반응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며 "다음 작업에서는 개선해 나가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키며 흥행한 가운데,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케데헌'은 약 7년에 걸쳐 제작됐다.
이 PD는 "기술적인 도전도 있지만 7년이라는 시간과 예산을 진행할 수 있는 제작 구조가 필요하다"며 "국내 시장만을 바라보고 무턱대고 예산을 올리기 어렵다.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파트너십 구축과 1~2년 지원에 그치지 않는 꾸준한 제작 환경이 마련 돼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이 PD는 "애니메이션으로서 한국형 슈퍼히어로 작품이 많지 않은데 '테러맨'을 통해 한국 애니메이션의 가능성과 시작점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관심을 주셔서 시즌2 제작 논의도 긍정적으로 진행되길 바란다"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