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이 오래전부터 외국 정상 등에 관한 감청 활동을 알고 있었다고 미국 정보당국 최고위자가 밝혔다.
이는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등에 대한 일부 감청 사실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몰랐다는 백악관 측 해명과 충돌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ODNI) 국장은 29일(현지시간) 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이처럼 말했다. 국가정보국은 국가안보국(NSA)과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사령탑'이다.
클래퍼 국장은 '국외 감청정보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전달될 수 있느냐'는 질의에 "(NSC가) 해당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실제 알고 있다"면서 "특정 표적이나 특정 (감청) 내용이 아닐지라도 전체 차원의 결과물은 볼 수 있다"고 답했다.
NSC의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이다. 클래퍼 국장은 구체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감청 사실을 알았는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일단 기존 백악관 해명을 반박한 것으로 읽힌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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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퍼 국가정보국장, '다 알면서 화낸다' 비꼬기도
클래퍼 국장은 외국 정상 도청 논란에 관해 "외국 지도자들에 대한 감시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라면서 외국 지도자들의 의중을 파악하는 게 정보활동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내가 1963년 정보학교에서 처음 배운 것 중 하나도 이것(외국 지도자 감시활동)"이라고 강조했다.
클래퍼 국장은 또 최근 감청 우려는 자국 정보활동에 익숙지 않은 정책결정권자들이 제기하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고 나서 "미국의 동맹국들도 미국을 상대로 첩보활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클래퍼 국장은 현 상황에서 고전 영화 '카사블랑카'가 떠오른다면서 '세상에나 여기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군'이라는 대사를 언급했다. 이 대사는 작중 카페의 사설 도박에 관여하던 부패한 프랑스군 장교가 애써 이런 사실을 숨기면서 화가 난 것처럼 내뱉는 말이다.
미국의 감청 사실을 애초부터 알던 사람들이 거짓으로 분노하며 정보기관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 NSA 국장 "기밀 오독해 민간인 감청 오보냈다"
이날 청문회에 함께 출석한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은 NSA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국민 수천만명의 전화기록을 수집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완벽한 오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분명히 말하건대 이는 유럽의 민간인을 상대로 수집한 정보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 뒤 정보를 제공한 사람들이나 이를 분석한 기자들이 그 기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이 방어와 군사작전 차원에서 수집한 것"이라며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정보수집 활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렉산더 국장은 특히 많은 경우 유럽 정보기관들도 전화기록 등에 접근하고 있으며 이 기록을 NSA와 공유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다이앤 파인스타인(민주·캘리포니아) 상원 정보위원장도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이는 미국이 프랑스와 독일을 상대로 수집한 게 아니라 (오히려) 프랑스와 독일이 수집한 것"이라면서 "이는 유럽의 민간인과 관계없고,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나토의 전쟁지역에서 수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 로저스(공화·미시간) 정보위원장은 "모든 나라가 외국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특징이라면 사생활 보호에 대한 약속과 정보수집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고 강조, 정보기관들을 옹호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일부 방청객이 "감시를 중단하라" "거짓말, 거짓말, 또 거짓말"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