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역사적인 기업이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 청구권 자금’을 종자돈으로 설립돼 한국 근대화의 초석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한 때 25%25를 넘는 영업이익률로 외국에서도 탐을 내는 알토란같은 한국 대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최근 몇 년간 침체를 거듭하며 그 위용을 잃고 있다. 경영 실적이 갈수록 하락하는데다, 정준양 회장의 사의 표명에서 확인된 것처럼 민간기업임에도 정권이 바뀌는 5년마다 수장도 함께 바뀌는 ‘CEO 리스크’가 반복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구조라면 향후 5년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CBS 노컷뉴스는 포스코의 침체와 그 원인, 향후 방향을 진단하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 주]
'제철보국(製鐵報國)'의 기치를 내걸고 맨주먹으로 바닷가 모랫밭에서 시작한 포스코 (포스코 제공)
잇따른 언론의 ‘사퇴 임박설’에도 입을 다문 채 버티던 정준양 회장이 15일 공식 사의를 표명했다.
최근 세계철강협회장에 취임할 정도로 강력한 경영 의지를 피력했던 정 회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는 사실에는 포스코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이 함축되어 있다.
‘정 회장의 사의 표명’에서 먼저 읽을 수 있는 것은 포스코의 경영 실적이다.
정 회장이 물러나는 데는 국세청의 세무 조사 등 박근혜 정부의 압박이 작용했지만, 포스코의 경영 실적이 좋았다면 여러모로 양상이 달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포스코는 우선 영업이익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포스코는 올 3분기 영업이익이 6328억원으로 4분 연속 영업이익 1조 클럽 달성에 실패했다.
수익성 악화는 영업이익률의 추이를 보면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구택 전 회장의 낙마로 정 회장이 취임한 것이 2009년 1월. 이 해의 영업이익율이 11.7%로 한 해전의 21.3%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이어 2010년 15.5%로 조금 좋아졌다가 11년 7.9%, 12년 5.7%로 거꾸러진 뒤 급기야 올 3분기에는 4.2%로까지 추락했다.
2004년 영업이익률이 25.5%였던 점을 감안하면 10년 사이의 추락에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이다.
포스코의 수익성 악화에는 물론 세계 철강 경기 침체와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 등 외부 요인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철강 주력 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 동력 발굴을 명분으로 진행된 정 회장의 무리한 인수합병과 국내외 시설 투자를 보다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포스코 정준양 회장
정준양 회장은 취임 후 대우인터내셔널 등 인수 합병,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포스코 제철소 등 해외 및 국내 제철소 건설 투자에 10조원에 가까운 돈을 들였다.
그 결과 2009년 36개에 불과하던 포스코 계열사는 2010년 48개, 2011년 61개 지난해에는 71개로 급증했다.
문제는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와중에 이런 투자에 걸맞은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수한 계열사가 기대만큼의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수익을 내지 못한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업 다각화를 위한 투자를 늘리다보니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2009년 50%대 중반이던 포스코의 부채 비율은 올 2분기에 90.5%로 늘어났다.
재무구조의 악화 속에 포스코의 신용등급도 하락했다. 지난해 10월 스탠더드 앤 푸어스 등 국제신용평가사는 포스코의 등급을 A-에서 BBB+로 강등했다. 외국에서도 탐내던 알토란같은 A급 철강사가 B급으로 떨어진 것이다.
부채비율 증가 속에 포스코는 신용등급이 더 이상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9월에는 자사주를 팔아 8000억 원을 조달하기도 했다.
포스코의 자사주는 언제 있을지 모를 적대적 인수 합병 위협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전대 회장 때부터 쌓아온 ‘전략주식’인데, 전체 자사주 물량 중 4분 1을 처분한 것이다.
자사주 매각에 대해 업계에서는 “포스코가 자사주를 매각할 정도로 돈이 말랐고, 상황이 급하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 같은 경영 실적 악화를 총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주가이다. 지난 2010년 1월에만 해도 63만원대였던 포스코의 주가는 지난 7월초 20만원대로까지 하락했다가 현재 32만 6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한 때 삼성전자와 함께 묻어 놔야 할 우량주 1순위로 꼽히던 포스코가 어느 새 ‘잡주’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실적 악화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일찌감치 ‘정준양 회장 책임론’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정 회장의 인수 합병과 해외 건설 투자는 본업인 철강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면서도 에너지와 소재 등 비철 분야의 개척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비전 2020’계획에 따른 것으로, 오랜 생존 고민 끝에 나온 산물이라는 것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철강 경기 침체 속에서도 포스코가 5% 안팎의 영업이익율이라도 내는 것은 정회장이 나름 선방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포스코의 성장 방향을 에너지와 소재 등 비철 부문으로 확대한 것은 미래 비전으로 의미가 있지만, 이명박 정권과 보조를 맞추는 듯한 불필요하고도 무리한 인수 합병으로 그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며 “결국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도 일정 시간 내에 수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간 계산에 실패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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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수익성 악화도 악화이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 경영자가 그만 두는 과정 속에서 포스코의 위상이 하락하고 포스코 구성원들의 자신감이 흔들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차기 회장직에 누가 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