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이 미국 뉴욕에서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의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봤다며 배상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을 냈다.
은행의 환율 조작 여부에 대한 각국 사법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인데다, 미국의 퇴직연금이 같은 내용으로 제기한 집단소송과 맞물려 있어 재판 과정과 결과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특히 파생금융상품인 '키코'(KIKO) 피해 기업들이 미국에서 제기한 개별 소송의 중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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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기업소송 전문 법무법인인 김앤배(Kim&Bae, 대표 김봉준)는 전자부품업체 심텍을 대표 당사자로, 바클레이스은행과 씨티그룹,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치뱅크, JP모건체이스, 내셔널 어소시에이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UBS 등을 피고로 하는 집단소송을 뉴욕주 남부지방법원에 제기했다고 17일(현지시간) 밝혔다.
원고측은 소장에서 이들 은행이 담합을 금지하는 미국 셔먼법과 뉴욕주의 상법 등을 어기고 공모를 통해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 한국 기업들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피고 은행의 딜러들이 '더 밴디트 클럽'(The Bandit's Club)이나 '더 카르텔'(The Cartel) 등으로 알려진 인터넷 채팅룸이나 휴대전화 문자 등을 이용해 국제 외환시장의 기준환율(WM/로이터스 레이트)에 대한 '작전'을 실시간으로 벌여 자사의 배를 불리는 반면 원고 기업에는 피해를 줬다는 것이다.
하루 4조7천억∼5조3천억 달러 규모인 국제 외환 시장에서 이들 은행의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60%를 넘는 만큼 환율 조작은 현실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원고 측은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미국과 영국, 스위스,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각국의 사법 및 금융감독 당국이 은행들의 이런 공모 의혹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글로벌 금융기업의 환율 조작 의혹과 관련해 집단소송을 낸 것은 처음이다. 키코를 비롯해 피고 은행들이 판매한 각종 환헤지 상품으로 피해를 본 국내 기업이나 개인은 누구나 이 소송의 원고 자격을 갖는다.
이 사건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헤이버힐 퇴직연금이 이들 은행을 상대로 제기한 집단소송과 같은 재판부에서 병합 심리될 전망이다. 헤이버힐은 은행들의 환율 조작으로 피해를 봤다며 수십억달러의 배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법조계에서는 이번 집단소송이 씨티은행 본사 등을 상대로 국내 기업들이 미국에서 제기한 소송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다른 은행들이 집단소송의 부담을 덜기 위해 씨티은행에 키코 소송의 합의를 압박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심텍과 상보, 부전 등 한국 씨티은행의 키코 계약사들은 키코 상품의 판매가 전적으로 미국 본사의 관리와 감독, 통제 아래 이뤄졌다며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장을 지난 7월부터 뉴욕 법원에 잇따라 냈다.
김앤배의 김봉준 대표 변호사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 법원에서는 키코 같은 상품을 판매한 은행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하는 판결이 잇따랐다"면서 "각국 사법당국의 조사 결과도 지켜봐야겠지만 미국에서는 소비자 권익을 중시하는 분위기기 강하기 때문에 승산있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키코(KIKO) = '녹인'(Knock-In), '녹아웃'(Knock-Out)에서 따온 말로 기업이 수출대금에 대한 환율변동 위험에 대비하도록 은행에서 만든 파생상품이다. 환율이 계약상 지정된 상단보다 높은(Knock-In) 상태에서 만기가 되면 은행이 기업의 가입금액을 계약환율로 사는 권리(콜옵션)가 주어진다. 하단보다 낮은(Knock Out) 상태가 되면 계약은 무효가 된다. 2007∼2008년 키코에 가입한 국내의 수출주도형 중소기업들은 갑작스런 원화약세로 큰 손실을 봤다. 이에 불공정 거래와 불완전 판매 등을 주장하며 국내 시중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지난 9월 대법원은 사실상 은행측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