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계기로 동북아 정세가 가파른 긴장의 파고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사태 초기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형성된 대립전선이 점차 G2(주요 2개국) 차원으로 확전하는 조짐이다.
미국은 지난 25일(미국 동부시간) 오후 7시 중국에 사전통보도 하지 않은 채 B-52 전략 폭격기 두대를 동중국해 상공으로 비행시켰다.
관련 기사
오래전부터 계획돼온 정규훈련의 일환이라는게 미국 당국의 설명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고도의 메시지라는게 외교가의 지배적 분석이다.
전략폭격기 출동이라는 '위력과시'를 통해 중국이 23일 발표한 방공식별구역 설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이는 미국 백악관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불필요한 선동적인 행위'라고 공개 비판하고 있는 것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이런 행보는 동북아 역내 패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경쟁에서 확실한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여기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과의 '포용'에만 신경쓸 뿐 중국의 패권강화 움직임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워싱턴 내부의 비판론을 의식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지난 20일 펴낸 '미·중 군사협력' 보고서에서 "미국은 지난 30년간 중국과 견실한 군사관계를 구축하려 시도했으나 해상분쟁지역에서 중국의 패권적 행동을 억지하는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미·중 양국이 1997년 군사해양안보협력(MMCA)을 체결하고 역내 군사활동시 해양과 항공에서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노력하기로 했으나 미국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해상작전시의 안전과 항공의 자유를 누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미국이 단순히 메시지를 주는 차원을 넘어 중국과의 물리적 충돌상황까지 가정한 것으로 보기는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북핵문제 등 역내 현안 해결을 놓고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이 긴요한데다 사태를 지나치게 확전시켰다가는 감당이 어려운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는 분석에서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에 대해 분명한 시그널을 보내면서 일종의 '반응'을 떠보려는 차원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일단 중국이 미국의 이번 행동에 대해 특별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충돌국면까지는 이어지지는 않은 상태다.
여기에는 중국의 일방적 방공식별구역 설정을 바라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은데다 일본과 한국은 물론 아세안 국가들의 반응이 부정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현 정세는 언제 어떤 식으로 상황이 악화될 지 모르는 '살얼음판' 국면이라는게 지배적 분석이다.
중국이 영유권 문제를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는데다 그동안 자국의 영해 인근에서 미 해군과 공군이 군사작전을 펴는데 대해 극도의 거부반응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국이 미국과 유사한 형태로 '팃포탯'(tit for tat.맞받아치기) 전략을 구사하며 동중국해에 대한 발언권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중국이 애초에 방송식별구역을 설정한 것 자체가 미국을 직접 겨냥한 포석이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어 추가적인 대응조치가 뒤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큰 틀에서 동북아 패권을 둘러싼 G2간 힘겨루기의 성격을 띤데다 양국 동맹국들의 전략적 이해까지 가세하고 있어 상황이 유동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현실성은 크지 않지만 물리적 충돌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01년 4월 일본 오키나와 기지에서 이륙한 미국 해군의 EP-3 정찰기가 하이난(海南)섬 남동쪽 공해상에 접어들었다가 중국군의 F8 전투기들과 충돌해 중국 전투기 1대가 추락한 바 있다. 당시 중국 전투기들은 미국 정찰기를 향해 "중국 영공을 벗어나지 않으면 격추하겠다"고 경고했었다.
양국의 갈등이 확전할 경우 현재 미·중간에 논의되고 있는 군사협력 현안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물론 내년 중국군이 사상 처음으로 참가하는 '림팩'(2년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최대 규모의 해상훈련)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6월 정상회담 이후 협력 쪽에 무게가 실려있던 미·중 관계에 예기치 못한 '복병'이 부상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