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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없어졌다"…'비정규직 잔혹사' 어떻게 끝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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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이 없어졌다"…'비정규직 잔혹사' 어떻게 끝냈나

    • 2013-12-17 06:00

    [노사문화가 신(新)경쟁력 ④] 전원 정규직 전환의 전설 '자산관리공사'

    얼마 전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을 촉발시켰다. 한 기업의 노사문화가 기업의 이미지는 물론 제품판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노사관계는 더 이상 대립과 투쟁의 관계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훌륭한 기업의 노사문화는 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가 됐다. 노사문화는 어떻게 기업경쟁력과 연결되는가. 노사문화 ‘히든 챔피언’들의 사례를 통해 그 노하우를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 하루아침에 없어진 직장.. '비정규직 잔혹사'의 시작

    월요일 아침. A씨(당시 38세)의 직장이 갑자기 없어졌다. "토요일 퇴근하고 일요일에 비상이 걸리더군요. 그러더니 다음날 은행이 문을 닫았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1998년 6월 29일 월요일, 금융감독위원회는 5개 은행(동화, 대동, 동남, 경기, 충청은행)의 퇴출을 전격 발표했다. 은행은 정말로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았고, 은행원들은 순식간에 길거리 신세가 됐다.

    전격적인 퇴출에 항의하는 집회도 벌여봤지만, IMF 외환위기의 그늘이 짙던 시절, A씨는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 했다. 6개월간 구직활동을 벌인 끝에 A씨가 취직한 곳은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였다. 당시 공사는 은행의 부실채권을 처분하는 업무를 맡았고, 은행 내부 사정에 밝은 전직 은행원들이 대거 채용됐다.

    채용됐다는 안심도 잠시, '비정규직 잔혹사'가 시작됐다. A씨를 비롯해 당시 채용된 직원들은 모두 1년 계약직이었다. 1년 뒤 실적을 평가해 하위 30% 아래에 들면 무조건 해고되는 조건이었다. 비정규직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던 시절. A씨는 이전 연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냉혹한 생존경쟁에 매달렸다. "고용불안에 대한 걱정이 정말 컸습니다. 마치 파리목숨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여기까지 A씨의 이야기는 여느 비정규직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A씨의 '피 말리던' 직장생활은 2003년에 끝이 났다. 회사와 노조가 비정규직의 단계별 정규직 전환에 합의한 것이었다. 자산관리공사 노사는 지난 2003년 17명을 시작으로, 2007년 8월까지 비정규직 469명 전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전설'을 낳았다. 무기계약직이 아닌 완전한 정규직으로의 재고용이었다.

    2006년 7월 자산관리공사는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 노조의 통합을 이뤄내고, 이듬해 8월에는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화하는데 성공했다. (출처 = 노사브라보 www.nosabravo.or.kr 홈페이지)

     

    ◈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 전환의 전설

    2013년 겨울, 우리사회의 비정규직들은 여전히 '파리목숨'에 불과하고,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6년 전, 자산관리공사는 어떻게 정규직 직원보다 더 많은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흡수하는데 성공했을까.

    '비정규직 잔혹사'를 청산하는데는 업무가 '전문적이면서도 가변적인' 자산관리공사 특유의 분위기가 한몫 했다. 자산관리공사는 은행들의 부실채권 정리를 비롯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초대형 기업의 매각, 국유재산 관리, 서민들의 신용회복, 최근의 행복기금사업까지 다양한 업무를 맡아왔다.

    직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전문분야에 투입되기 때문에 서로의 업무영역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A씨는 이를 두고 "분야별로 매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였지만, 업무에 대해서는 큰 불협화음 없이 화합하는 회사의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존중문화'를 바탕으로 정규직 노조는 기존 조합원들의 큰 반발 없이 비정규직을 끌어안을 수 있었다. 물론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끌어안기위한 양보와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

    게다가 사측도 해마다 새롭게 부여되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갈라져 노-노 갈등이 심화될 경우 업무추진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은 자명했다. 이 또한 회사가 상당한 규모의 정규직 전환이지만 이를 단계적으로 용인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자료사진)

     

    ◈ 기적의 시작은 '신뢰'

    하지만 무엇보다 '비정규직 잔혹사'를 종식시킬 수 있었던 계기는 '신뢰'였다. 2006년 7월 정규직 노조와의 완전통합을 이끌었던 오승헌 당시 비정규직노조 위원장은 "비정규직 해직자 구제를 요구하던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려 노력하던 사장과 경영진의 모습을 보고 신뢰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 논의가 급진전 됐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 2005년, 해고된 비정규직 직원을 복직시켜달라고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사측은 인사위원회를 거쳐 정식 해고된 직원을 복직시킬 수는 없다는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해고자들을 자회사에 고용하는 방식으로 노조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갖은 갈등과 소송으로 점철된 비정규직 노조와 사측이 본격적인 대화와 타협을 시작하는 계기는 그렇게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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