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3일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하는 한국군에 일본 육상자위대의 탄약을 제공하기로 한 배경과 이번 결정이 일본의 안보 정책, 나아가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본 정부는 상황이 긴급하고 인도적인 필요가 있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유엔 시설을 경비하는 한국군에 총알이 부족해 한국군이나 피난민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유엔의 판단이고 이에 따라 일본 정부도 탄약 제공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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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자위대의 존재를 부각할 수 있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추진하는 '적극적 평화주의'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도 탄약 제공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 평화주의는 국제 안전보장에서 일본의 역할을 키우겠다는 정책 기조로, 자위대의 역할을 확대해 유엔 평화유지 활동상 제약을 줄이자는 주장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현지 한국군에 대한 탄약 제공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평화적인 조치'라는 점에서 일본이 이를 적극적 평화주의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삼을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일본의 무기 수출을 사실상 제약해 온 '무기수출 3원칙'을 없애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가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이번 조치를 무기수출 3원칙의 예외로 간주하기로 했고 이런 내용의 담화를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엔은 22일 오전 탄약 제공을 요청했는데 일본 정부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해 이런 의구심이 더 커지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23일 오후 스가 관방장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이 참여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4인 각료회의'를 열어 탄약 제공을 결정했다.
일본의 PKO협력법은 필요한 경우 내각회의 결정으로 물자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그간 일본 정부는 물자에 무기나 탄약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뜻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이번 결정을 기존 방침을 뒤집는 것이다.
교도통신은 일본이 그간 정부 견해를 바꿀 때 내각법제국 등 정부 내 검토를 거쳐 국회에서 논의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이처럼 NSC가 '즉결 처분'한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에 탄약 제공을 요청한 것이 일본의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판단과 무관하다는 뜻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수단에서 활동하는 우리 군인들의 안전 문제"라면서 "강도가 칼을 들고 다가오는 상황에서 옆집에 총을 집어달라고 한 것과 같다"며 사안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일본 내에서는 탄약 제공 결정이 적극적 평화주의에 활용할 수준은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이 군사행동에 필요한 물품을 직접 주고받을 수 있게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을 맺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일본 방위연구소 총괄연구관 출신인 다케사다 히데시(武貞秀士) 도쿄 다쿠쇼쿠대 강사는 "한국과 일본이 아프리카의 안전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활동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부족한 것을 서로 주고받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를 계기로 물자를 서로 공급하는 협정을 하면 더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일본은 유엔에 탄약을 공급하는 것이고 이를 한국군에게 제공하는 것은 전적으로 유엔의 결정"이라며 "일본이 군사적인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이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아니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번 결정이 한일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제한적이지만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없지 않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국제정치경제연구실장은 "일회적인 사건이라서 확대해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국제사회에서 활동할 때 한국과 일본 간에 서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남수단에 파견된 일본 육상자위대가 보유한 소총용 5.56㎜ 탄약 1만 발을 유엔군 부대에 무상 제공하기로 이날 NSC에서 결정하고 이어 서면 각료회의에서 승인했다.
이 탄약은 현지에서 PKO에 참여 중인 한국군에 공급된다. 일본이 PKO협력법에 따라 외국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