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살갈퀴'에 대해서 이성권 자연생태해설사를 통해 알아본다. [편집자주]월-금>
살갈퀴. (사진=이성권 자연생태해설사)
우리는 친구로서, 직장동료로서, 아니면 어떤 모임의 일원으로서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생각이나 활동영역이 바뀌면서 어느 순간 그 관계는 달라지기도 합니다. 식물도 자신의 한결같은 꿈인 후손을 퍼뜨리기 위해 동물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식물은 사람과는 달리 관계를 맺는 대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꽃의 구조를 바꾸기도 하고 좋아하는 꿀을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대신 곤충은 식물을 위해 꽃가루를 다른 꽃으로 충실히 옮겨줍니다. 이렇게 식물과 곤충은 서로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요즘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살갈퀴라는 꽃도 마찬가지인데 개미와 벌이라는 좋은 파트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려면 살갈퀴라는 꽃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살갈퀴는 콩과의 덩굴성 두해살이 풀꽃으로 햇볕에 드는 곳이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이른 봄에 꽃을 피우면서 가장 흔하기 때문에 잡초처럼 취급되기도 합니다. 잎은 겹잎으로 되어 있고 작은 잎은 3~7개 정도 달려 있습니다. 잎 끝에는 덩굴손이라는 것이 있어 물체를 감고 올라가면서 자랍니다. 그리고 잎 아래쪽에는 턱잎과 꿀샘을 가지고 있습니다. 꽃은 제주에서는 2월부터 시작해서 6월까지도 볼 수 있는데 잎겨드랑이에서 붉은 빛이 도는 자주색 꽃이 올라옵니다. 일반적으로 콩과 식물들이 꽃대에 많은 꽃을 피우는 것에 비해 살갈퀴는 1~2개의 꽃이 달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꽃은 큰 벌 보다는 꿀벌처럼 작은 벌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이며 입술모양으로 생겼습니다. 위 꽃잎은 꼿꼿이 깃을 세우고 벌들에게 꽃이 피었다는 신호를 보내고 아래 꽃잎은 잘 앉을 수 있도록 평평하게 만들어 벌들의 착륙장 역할을 합니다. 꽃으로 벌이 날아들면 무게 때문에 위 꽃잎은 아래로 처지게 되고 그 안에 있는 암술과 수술은 자연스럽게 몸체에 닿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벌은 몸에 꽃가루가 묻히게 되고 다른 꽃으로 가서 꽃가루받이를 도와주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살갈퀴는 그 대신 벌에게 맛있는 꿀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잎과 줄기에는 개미가 등장합니다. 잎줄기 아래쪽 턱잎에는 꿀을 저장하고 있는 검은색 꿀샘이 있습니다. 개미는 꿀을 찾아 살갈퀴로 찾아드는데 이 과정에서 줄기나 잎을 갉아 먹는 해중을 몰아냅니다. 물론 개미가 살갈퀴를 보호하려는 목적 보다는 꿀을 차지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살갈퀴와 개미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연약한 꽃의 모습과는 달리 살갈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가진 것이 재미있습니다. 갈퀴는 검불을 긁어모으기 편하도록 만든 농기구입니다. 작은 잎이 양쪽으로 마주보며 나란히 달린 모습이 농기구 갈퀴를 닮은 데서 유래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접두어 '살'의 유래에 대한 설명이 모호합니다. 단지 잎이 달린 모습이 머리빗의 빗살을 닮아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잎이 좁고 날카롭게 보이는 데서 유래했다는 말도 있지만 모두 확실치는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학명 Vicia angustifolia var. segetilis 가운데 속명 Vicia는 '감긴다'는 뜻이 있는데 덩굴손이 있어 붙여진 모양입니다. 또한 종소명 angustifolia는 '좁은 잎'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살갈퀴의 작은잎이 비교적 좁기 때문에 붙여졌고 변종소명 segetilis는 '밭에서 자라는'이라는 의미로 밭에서 흔히 보이는 식물이기 때문에 붙여진 듯합니다.
살갈퀴. (사진=이성권 자연생태해설사)
변종소명에서 보듯이 살갈퀴는 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어 잡초처럼 취급되기도 하지만 요즘은 녹비식물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녹비식물은 토지개량을 위해 화학비료를 쓰는 것이 아니라 녹색인 상태인 식물의 잎과 줄기를 비료로 이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친환경농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운영, 클로버 등 주로 콩과식물을 이용하는데 그것은 왕성한 번식력과 뿌리에 살고 있는 근립균(根粒菌)이라고 하는 뿌리혹박테리아 때문입니다. 콩과식물인 살갈퀴도 녹비식물로 이용됩니다. 무더기로 자라는 살갈퀴는 다른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하고 농작물의 싹이 올라올 즈음이면 일 년 생활을 마감하기 때문에 피해를 주지도 않습니다. 특히 잎과 줄기는 분해속도가 빨라 좋은 거름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다른 콩과 식물처럼 살갈퀴 뿌리에는 둥근 알처럼 생긴 덩어리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뿌리혹박테리아라고 하는 균이 살고 있는데 공기 중의 질소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대기 중의 질소는 아미노산이나 단백질의 원료가 되는 원소입니다. 살갈퀴의 뿌리혹박테리아는 풍부한 질소를 고정시켜 살갈퀴에 공급함으로써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콩과식물에는 단백질이 많고 콩을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그 댓가로 뿌리혹박테리아는 살갈퀴로부터 잎이나 뿌리에서 만들어낸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줄기가 마른 다음에도 양분은 흙속에 그대로 남아있어 다른 식물의 생장에도 도움을 줍니다.
제주에서는 살갈퀴를 '복개기'라 하여 소들이 유독 좋아하는 풀로 알려졌습니다. 단백질이 많은 살갈퀴는 소에게는 훌륭한 영양보충제인 셈입니다. 그래서 식물체 전체를 사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도 예전 춘궁기에는 구황식물로 이용하기도 했는데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 먹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방에서는 소변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이뇨제로 처방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포근한 날씨로 봄꽃들은 제철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꽃이 예쁜 복수초나 변산바람꽃, 노루귀에는 관심을 두지만 너무나 흔하여 잡초로 취급되는 살갈퀴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하지만 살갈퀴는 농작물을 잘 크게 하여 우리에게는 큰 도움을 주는 풀꽃입니다. 또한 꽃을 가만히 살펴보면 은은한 아름다움이 있기도 합니다. 살갈퀴가 다른 봄꽃들처럼 화사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눈길을 주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붙여졌는지 살갈퀴의 꽃말은 '사랑의 아름다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