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개봉한 영화 '나이트 크롤러'의 주인공 루이스 블룸(제이크 질렌할)은 명민한 청년이다. 스스로 "나는 모든 것을 빨리 배운다"고 말할 만큼 자부심도 강하다.
그런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그는 생계형 도둑이다. 거리에서 훔친 철조망이나 하수구 뚜껑, 자전거 등을 팔아 하루하루 연명한다. 직장을 구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다. "오늘날에는 직장에 충성한다고 윗세대처럼 고용이 보장되는 게 아니잖나"라고 반문하는 것을 보면, 자신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데는 사회 구조적인 모순 탓이 크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루이스가 훔친 물건을 사들이는 업주들은 그에게는 스승과도 같은 존재다. 조금이라도 더 비싼 값을 받으려는 루이스에게 그들은 "내가 주는 돈 받지 않으려면 돌아가라"고 무심한 듯 내뱉는다. '갑'을 상대하는 '을'로서 손해 보는 거래를 여러 차례 치른 루이스는 분명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도구'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명민함을 무기로 이러한 거래법을 응용하고 더욱 발전시킨다.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철저히 살피고 그 빈틈을 발견해 자신이 인정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길도 모색한다. 그 길은 바로 사건 현장을 찾아다니며 촬영하고 이를 언론 매체에 파는 나이트 크롤러가 되는 것이었다.
나이트 크롤러의 생리를 빠르게 터득한 루이스는 승승장구한다. 거래에 있어서도 갑의 입장에 서는 경우가 점차 많아진다. 그에게 "더 적나라한 화면을 가져오라"고 요구해 온 방송사 국장과의 거래에서도 우위를 점할 정도다.
루이스는 잘 안다. 빈민층이 백인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사건처럼, 뉴스 소비자의 공포를 조장하는 화면을 방송사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을 말이다. 그런 그가 조수에게 말한다. "공포는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 증거라고."
영화 '나이트 크롤러'의 한 장면. (사진=㈜누리픽쳐스 제공)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를 쫓아다니는 나이트 크롤러는 이러한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러한 일들이 자신에게 벌어지지 않은 것에 안심하거나, 앞으로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스스로를 고립시킬 것이다.
그렇게 사건·사고를 부추기는 사회 구조를 사람들과 함께 변화시키려 하기보다는, '내 한 몸' '혈연 가족'으로 관계의 테두리를 좁히면서 자신도 모르게 사회 모순을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그리고 주인공 루이스는 이러한 공포와 고립을 먹고 자란다.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라는 슬로건을 보고 듣고 외치면서 자란 우리는 옆에 있는 사람을 조력자가 아닌 경쟁자로 바라보는 데 더 익숙하다. 개인으로 파편화된 우리는 팔꿈치로 상대를 밀치면서까지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르려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루이스의 말대로 공포가 실제처럼 보이는 가짜라면? 먹이사슬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 누구나 가능하다는 말이 진짜처럼 포장된 허구라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조차 상품처럼 거래되는 것으로 여기는 루이스는 극단의 경쟁사회가 길러낸 괴물이다.
그렇게 충실하게 나이트 크롤러의 길을 간 루이스는 체제의 수호자로서 잔인한 민낯을 가리고 웃음이라는 가면을 쓴다. "인생에서 최악의 날에 저를 만나게 될 겁니다"라는 루이스의 멘트가 경쟁사회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로 다가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