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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르포] 갠지스강으로 일가족 떠나보내는 40대 가장 끝내 혼절

아시아/호주

    [네팔르포] 갠지스강으로 일가족 떠나보내는 40대 가장 끝내 혼절

    "억울하게 눈 감았지만 가장 좋은 세상으로 가길..."

    카트만두 빠슈빠띠나트(Pashupatinath) 사원 밖 노천 화장터에 네팔인 릴라씨의 일가족 시신이 트럭에서 내려지고 있다.(카트만두 = 박지환 특파원)

     

    네팔에서 가장 신성한 힌두교 사원으로 꼽히는 카트만두 내 빠슈빠띠나트(Pashupatinath) 사원 앞에 흐르는 폭 20m의 강은 네팔인들이 신성시하는 갠지스강으로 이어진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28일 오후 5시쯤 강둑 한켠에 서있던 네팔인 릴라 수나라(41.남 Lilla Sunara)씨는 끝내 혼절했다. 일가 친척으로 보이는 장정 대여섯명은 쓰러진 릴라씨를 들쳐 업고 사원을 빠져나갔다.

    릴라씨가 혼절하기 직전 파란색 5톤 트럭이 사원 옆을 비껴 강둑으로 들어왔고 장정들은 공개된 공간에서 본격적인 화장 준비를 했다. 트럭에는 하얀색 사체 수습용 가방에 담긴 시신 2구와 까만 비닐봉지에 아무렇게나 둘둘 말린 시신 3구 등 모두 5구의 시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릴라씨는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자매들과 카트만두 내 타멜(Thamel) 지역에 살았다. 휴일인 지난 25일 집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던 형제자매와 조카들은 갑자기 무너져 내린 건물 더미에 속수무책으로 깔렸다. 무너진 벽돌집은 콘크리트도 철근도 사용하지 않은 지은 지 30년이 넘은 전통가옥이었다.

    비가 내리던 28일 오후 대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네팔인들이 백향목과 짚더미로 피붙이를 화장하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카트만두 = CBS노컷뉴스 박지환 특파원)

     

    릴라씨를 포함해 살아남은 일가 친척은 삽과 곡괭이, 그리고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치웠지만 피붙이들은 모두 차례차례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 숨진 5명은 릴라씨의 아들과 여동생, 그리고 여동생의 아들(14)과 딸(8), 큰누나의 아들 등 일가 친척이었다. 이들은 강둑에 드문드문 늘어선 지름 2m 정도의 동그란 화장터에서 차례차례 재가 됐다. 이글거리는 화염 옆에서 딸과 손자, 손녀를 떠나보내는 릴라씨의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무너져내렸다. 친척인 딜리만 수나라(48.남 Dilliman Sunara)씨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 자식들과 손자들을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가 쓰러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네팔도 인도와 마찬가지로 카스트 문화가 존재한다. 왕족을 포함한 상위계급은 빠슈빠띠나트 사원 안에 차려진 비교적 고급 화장터를 이용하지만 릴라씨처럼 아랫 계급은 강둑에서 가족들을 떠나보낸다. 그보다 하층계급은 강둑에 차려진 화장터도 이용하지 못하고 흐르는 강 바로 옆에서 불을 피웠다. 백향목으로 시신을 화장해야 좋은 곳에 간다고 믿는 네팔인들은 상위계급이 태우고 남은 검게 그을린 숯을 가져다 죽은 피붙이의 곁에 두기도 했다. 이들은 지진으로 유명을 달리한 피붙이의 영혼이 강을 타고 신성한 갠지스강까지 흘러갈꺼라며 힌두교 쉬바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시신을 빨리 화장해야 좋은 곳으로 간다고 믿는 네팔인들은 화장터가 아닌 주거지 인근에서도 백향목과 나뭇가지를 주워다 불을 피우기도 했다.

    네팔인들은 부모를 잃으면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수염을 깎는다. 화장터 옆에서 한 남성이 비통해하고 있다.(카트만두 = CBS노컷뉴스 박지환 특파원)

     

    네팔 정부는 이날 대지진에 따른 사망자 수가 5057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부상자 수도 현재까지 1만910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진앙지인 고르카와 기야콜, 사우파니, 와르팍, 라르팍, 군드라, 라파, 카시가운, 케라우자 지역은 국제구조단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사망자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동부에 있는 신드후팔축 지역에서는 하룻동안 110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되는 등 카트만두 외곽 지역의 피해는 추정조차 불가능하다.

    7.8 강진에 크게 부숴진 벽돌집이 언제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다.(카트만두 = CBS노컷뉴스 박지환 특파원)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은 "카트만두는 수도인 만큼 강진 사흘째에 접어들면서 주요 도로 복구 작업이 시작됐지만 다른 지역은 길도 끊기고 통신마저 두절돼 구조작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가들이 구조대를 파견하고 있지만 피해가 난 지역이 광범위하고 접근조차 쉽지 않아 사망자는 1만명을 넘길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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