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낮이 따로 없다. 사람들이 다니는 인도 한쪽이나 시청 앞 벤치 등에는 코트나 담요를 덮고 잠을 자는 노숙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낮에 거리에서 마약을 주사하고는 보행자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심지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텐트 안에서 섹스하는 노숙자들도 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주민들에게 지난 십 수년간 노숙자 문제는 불쾌하지만 익숙해 져야 하는 일상이었다. 과거 히피 문화의 영향을 받은 데다 날씨가 좋고 관광객이 붐비는 도시의 특성 탓에 노숙자가 넘쳐나는 곳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다. 노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신병을 앓고 있어 혼자 중얼거리거나 보행자를 위협하는 행동을 해 불쾌감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 해묵은 노숙자 문제를 이제는 방치해선 안 되겠다면서 샌프란시스코 언론인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마더 존스 등 영향력 있는 신문들과 공영 방송인 KQED 등 지역 방송사 대표들은 지난달 모임을 하고 노숙자 정보와 콘텐츠를 공유해 내달 29일 노숙자 보도를 대서특필하기로 합의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6일 보도했다.
샌프란시스코 매거진의 존 스타인버그 편집장은 "더는 좌시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4계급(언론)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는 샌프란시스코 지역 30개 언론사 대표들이 참여를 약속했다.
크로니클의 오드리 쿠퍼 편집장은 "샌프란시스코 주민들은 그날 하루 신문을 펼치거나, 방송을 켜거나, 트위터 또는 페이스북에 로그인하면 노숙자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한 기사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의 최대 언론사인 크로니클은 심지어 일주일 내내 노숙자 문제 대책 관련 시리즈를 게재할 예정이며 1면에도 해결 방안과 관련된 사설을 잇달아 싣기로 했다. 가상의 해결책을 제시한 뒤 이를 실험해 보는 과학적 방법까지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또 시 당국에는 정신병을 앓고 있는 노숙자를 수용할 수 있는 정신건강센터를 확장할 것을 촉구하기로 했다.
NYT는 "오랫동안 미국 언론에서는 집단적 주장이 금기시됐다"면서 "기자들과 편집자들은 기사로 인해 부각된 문제의 해결 방법을 논의하는 것을 조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특정 명분을 옹호하거나 지지하는 언론인은 취재에 선입견을 품을 수 있고 보도가 선별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전통이 강한 샌프란시스코 언론인들의 모임에서는 그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다. 공영 방송인 KQED의 홀리 커넌 보도국장은 "어떤 이견이나 알력도 없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라면서 "반대로 논의는 한 발 더 나가야 한다는 쪽으로 흘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지역 라디오 방송인 KCBS는 이 모임에서 빠졌다. KCBS는 "노숙자 문제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굳이 정규 편성을 바꾸면서까지 보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동안 해왔던 대로 이 문제를 다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저널리즘의 문제 해결 역할을 강조해온 학회나 관련 단체들은 이번 샌프란시스코 언론계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비영리단체인 미국 탐사보도센터의 앤드루 도너휴 시니어 에디터는 "독단적이고 남의 사생활 캐기에나 초점을 맞추는 일부 언론의 태도가 대중의 비난을 사고 있다"면서 "언론계에 분노 피로 현상이 있다. 언론인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곁을 너무 쉽게 떠나고 그것이 언론과 대중을 유리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의 창시자인 코트니 마틴은 샌프란시스코 언론계 얘기를 들었을 때 전율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녀는 "언론계에는 우리의 역할이 워치 독(감시자)에 한정돼 있다는 편견이 있다"면서 "그러나 언론인의 일은 솔루션(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며 사람들은 망가진 시스템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를 읽고 싶어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