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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쪽지예산' 비판은 국회의원을 춤추게 한다?

기자수첩

    [뒤끝작렬] '쪽지예산' 비판은 국회의원을 춤추게 한다?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5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예산안 및 부수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정회되자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지난 5일 밤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어에 '국회방송'이 올라왔습니다. 2018년도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난입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설전을 벌이는 '막장 드라마'를 발 빠른 국민들이 국회방송을 통해 찾아봤기 때문입니다.

    예산안 처리 과정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진행됐습니다. ▲일자리 안정자금 ▲공무원 충원 ▲아동수당 ▲기초연금 ▲건강보험료 재정 ▲남북협력기금 ▲법인세 ▲소득세 등 쟁점사안을 두고 여야 원내지도부는 십수 차례 회동했고, 이 과정에서 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가 조용히 사과했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서로 '국가의 미래', '아이들의 미래'를 들먹이며 다퉜던 여야. 하지만 2018년도 예산안에는 국가의 미래도, 아이들의 미래도 없었습니다. 대신에 '00하천 정비', '00마을 경관숲 조성', '00사 명상힐링센터' 등 지역구 예산이 눈에 띕니다. 이른바 '쪽지예산'들입니다.

    '쪽지예산'으로 국민혈세를 밀실에서 나눠 먹은 이들이 있었으니, 일명 '소소위'(국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 보류안건심사 소위원회)에서 막판 계수조정을 한 민주당 윤후덕 의원(경기 파주갑)과 한국당 김도읍 의원(부산 북구 강서을),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고흥, 보성, 장흥, 강진)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특히 절정의 '쪽지예산' 스킬을 유감없이 발휘하신 분은 황주홍 의원입니다. 장흥 보림사 명상힐링센터 건립 예산 5억2천만원부터 강진천 하천정비 예산 5억원까지 수십억원을 지역구 예산으로 편성해놨습니다. 일부에서는 "100~200억원 수준"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에 언론은 일제히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밀실', '야합', '적폐', '구태', '흥정', '협박' 등 날 선 기조로 '쪽지예산'을 밀어 넣은 의원들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의원님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쪽지예산'은 자랑거립니다. 자유한국당 서청원 의원(화성시갑)은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청원 의원, 화성지역 발전예산 7,850억 확보!"라고 홍보하며 "일자리 창출과 복지 예산을 확대하면서 SOC 예산이 대폭 삭감됐음에도 불구하고 화성지역의 교통인프라가 개선을 위한 대중교통 SOC 예산을 대거 확보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남원, 임실, 순창)도 이날 페이스북에 "순창 밤재 터널과 임실 옥정호 수변도로.. 부디 제게 힘을 주세요"라며 "기재부 담당 예산 국장이 힘들다고 고개를 흔들길래, 제가 그렇다면 예산 합의를 통째로 깨버리겠다고 압박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국가 예산을 볼모로 잡아 지역구 예산을 처리했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한 겁니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쪽지예산'이 의원들의 자랑스러운 훈장이 되는 배경에는 지역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만 발전하면 장땡'이라는 인식이 만연한 게 사실입니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이 언론의 비판에도 '쪽지예산'에 매달리는 이윱니다.

    그러니 어느 의원이 '쪽지예산'으로 얼마를 챙겼다는 비판은 그 지역에서는 칭찬입니다. '쪽지예산'으로 비판받는 의원들은 언론의 회초리를 즐긴다는 게 여의도 정가의 통설입니다. 오히려 '쪽지예산'을 욱여넣지 못한 의원들이 무능하다는 푸대접을 받는 현실입니다.

    대책이 필요합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상설 위원회로 만들어야 한다거나 지역구 의원은 예결위원에서 배제해야 한다, 소소위 회의는 공개회의로 진행해야 한다 등 다양한 대책이 이미 많이 있습니다. 국회의 성찰과 결단만 남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넘어가는 분위깁니다.

    물론 '쪽지예산'이 100% 악(惡)한 것은 아닙니다. 정부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예산을 지역구 의원이 챙긴다는 차원에선 '용서할 수도 있는 관행'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돈이 어디서 왔느냐'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문젭니다. 정부는 당초 아동수당은 내년 7월부터, 기초연금은 내년 4월부터 지급하기 위해 1조1천억원과 9조8천억원의 예산을 각각 편성했으나, 야당 측에서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이용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지급시기를 9월로 늦췄습니다. 아동수당은 4천억원, 기초연금은 7천1백억원이 삭감됐고, 정부 지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국민들은 빈손으로 수개월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보건.복지.고용 세 분야의 예산은 당초 146조 2천억원이었지만, 최종 통과된 예산에서는 1조5천억원이 삭감된 144조7천억원이었습니다. 반면 SOC(사회간접인프라 사업) 예산은 애초 계획보다 1조 3천억원 늘었습니다. 이런 변화에 쪽지예산이 단단히 한몫했다는 추정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예산안을 살펴보면서 일부 유력 의원들의 쪽지예산이 다른 의원들에 비해 매우 적거나 없는 의원도 있었습니다. 칭찬하고 싶은 대목이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구에서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을까 염려돼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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