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전국 졸업식장에서는 아주 진풍경이 연출됐다. 졸업 축하 꽃다발에 프리지아, 안개꽃 등은 보이지 않고 하얗고 낯선 꽃이 대세를 이뤘기 때문이다. 바로 목화였다.
목화의 꽃말이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해서 유명 드라마에 등장한 이후 졸업식장의 축하용 꽃으로 둔갑한 것이다. 내년 2월 졸업식에도 어김없이 목화 다발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목화가 전량 이스라엘과 중국 등지에서 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반대로 국내산 꽃 소비가 그만큼 줄고 있다는 의미다.
비단 목화뿐만 아니라 국화와 백합, 카네이션 등 다른 종류의 꽃도 수입 의존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화훼 생산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한·중·일 3국이 이른바 '꽃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에 꽃 시장을 내 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수입 꽃 의존…목화 경매가격 1년 사이 5배 가까이 폭등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이달 들어 국내에서 거래되는 국화 경매가격은 1속(10송이)에 3천69원으로 지난 2015년 같은 기간의 3천232원에 비해 5.0% 하락했다.
장미 경매가격도 지난 2015년 12월에는 평균 7천716원에 거래됐으나 올해는 6천847원으로 11.3% 하락했다.
이에 반해 이달 들어 카네이션 경매가격은 1속에 5천64원으로 지난 2015년 같은 기간의 4천787원에 비해 5.8% 상승했다.
국내 카네이션 생산 기반이 80% 이상 무너지면서 중국 수입산에 의존하다 보니, 중국내 화훼 수출업자가 가격을 올리면 어쩔 수 없이 비싼 가격에 수입해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졸업식 꽃다발로 등장한 목화의 경우도 지난해 2월에는 1속에 4천30원에 불과했으나 올해 2월에는 1만8천842원으로 무려 5배 가까이 급등했다. 이 역시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일반 농산물도 그렇지만 꽃도 수입에 의존하다 보면 결국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무슨 수를 쓰더라도 국내 꽃 생산기반과 소비시장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자료=농촌진흥청 제공)
◇ 한·중·일 '꽃 전쟁'…후퇴하는 한국, 위기 맞은 화훼산업농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화훼재배 면적은 지난 2014년 기준 6천222ha, 일본은 3만721ha, 중국은 127만227ha로 한·중·일 3국의 꽃 생산기반 자체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하지만, 2010년까지만 해도 국내 꽃 시장은 자체 생산한 꽃으로 어느 정도 수급을 맞추면서 일부 부족한 것은 대만과 네덜란드, 태국 등에서 수입해서 썼다.
그런데 국내 꽃 소비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산 꽃이 물밀 듯 들어오고, 지난해 김영란법까지 겹치면서 국내 화훼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연간 꽃 수입액은 지난 2010년 4천474만 달러(1만1천956톤)에서 지난해는 6천297만 달러(1만4천626톤)로 6년 사이에 40.7%나 급증했다.
특히, 중국산 꽃 수입액은 2010년 1천70만 달러에서 지난해는 1천763만 달러로 6년 사이에 65%가 늘어났다. 또한, 일본산 꽃 수입액도 20만 달러에서 81만 달러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꽃 수출액은 지난 2010년 1억307만 달러(1만2천550톤)를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지난해는 2천643만 달러(2천937톤)에 머물렀다. 6년 사이에 꽃 수출액이 74.3%나 급감했다.
무엇보다도 대일본 꽃 수출액이 지난 2010년 8천27만 달러에서 지난해는 1천735만 달러, 대중국 꽃 수출액도 1천858만 달러에서 402만 달러로 각각 78%가 줄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꽃 수출액은 줄어들고, 수입액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일본,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내수시장과 수출시장 모두를 잃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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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국화, 백합 등 특정 품목 의존…국제 경쟁력 상실특히 우리나라는 그동안 연구기관과 일부 개인 육종가들을 중심으로 장미와 국화, 백합, 난 등 특정 품목에 편중돼 육종사업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꽃 수요에 대응하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이들 품목이 품질과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서 우리나라는 한·중·일 3국의 꽃 전쟁에서도 가장 뒤처지게 됐다.
예컨대 국화의 경우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일본이 가정집과 신사 등에서 종교 의식용으로 연간 3억본을 소비하지만 중국산이 1억본 정도를 차지하고, 한국산은 겨우 150만본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국화 재배면적이 지난 2008년 723ha에서 지난해는 374ha로 8년만에 반토막이 나는 등 갈수록 생산기반이 무너지면서 일본에 수출할 국화 물량이 줄어든 데다, 겨울철에 중국산 국화인 '신마'가 일본 시장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내 국화 시장마저도 중국산에 빼앗기고 있다. 중국산 '신마'가 국내 장례식장 등에서 대량 소비되면서 우리나라의 국화 수입액은 지난 2010년 73만 달러에서 지난해는 932만 달러로 무려 13배나 늘어났다.
국내 꽃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서 중국과 일본산 꽃이 주인 대신 안방을 차지한 형국이 됐다.
이에 대해 농진청 관계자는 "무엇보다도 국내산 화훼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내 꽃 소비가 살아나 우리 땅에서 더 많은 꽃을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 일본과 경쟁하기 위해선 장미와 국화, 백합 등 기존의 꽃 말고 목화와 안개초, 작약, 시클라멘 등 다양한 품목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