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사람들은 국정원이 군처럼 상명하복의 조직이어서 국정원장의 지휘아래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곳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정보를 다뤄보거나 권력 핵심에 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국정원이 무서운 곳"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국정원장도 직원으로부터 '패싱'당하는 곳이 국정원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댓글조작과 정치공작에 깊이 관여하며 MB정부의 실력자 중 실력자로 불렸다. 하지만 그도 내부에서 권력 다툼때문에 '패싱'당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2011년 2월 16일, 국정원 역사에서 희대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국정원 직원들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사건이다. 국가안보의 중추인 국정원이 '내곡동 흥신소로 전락한 사건'이라며 국제망신을 크게 샀던 사건이다.
사건은 당시 2월 16일 9시 27분에 발생했는데, 원 전 원장은 다음날 오전 11시에나 사건을 보고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야당은 "인사도 `대륜고 라인', 'SD(한나라당 이상득 의원)라인'이 다 주무른다더라"며 내부 권력다툼이 보고 지체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원 전 원장은 '시스템상 문제가 있고 고치겠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원 전 원장은 한때 '대륜고 라인'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야당중진의원에게 '대륜고(경북)라인'이 국정원 일을 사사건건 SD한테 보고한다"며 "정리를 할테니까 도와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상득과 원세훈 간 권력다툼이다.
국정원의 권력다툼은 권력 핵심이나 내부 관계자의 제보없이는 파악도 어렵다. 증거물이 없기때문에 정보나 제보 이상의 추적도 안된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
현직 국회의원 가운데 최고의 정보통이라면 단연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손꼽힌다.
박 의원은 2014년 10월 10일,군과 국정원의 권력암투설을 제기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청와대 문고리 3인방권력과 비서라인의 해체를 명령해야 한다"고 폭탄 발언을 내놓았다.
이헌수 국정원 기조실장의 사표 번복, 이재수 기무사령관 교체 파동에서 청와대 실세들 사이의 암투가 국가안보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박 의원은 이어 " 박 대통령이 언론보도(이헌수 사표설)를 보고 '역정'을 내자 이 실장이 유임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덧붙였다. 물론 청와대는 부인했다.
이헌수 전 기조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4년내내 국정원 인사와 예산을 주물렀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했던 몸통 중 몸통이다.
국정원 특활비는 정권 출범 초기인 2013년 3월부터 2016년 8월까지 40억원 이상이 꾸준이 상납됐다.
특활비 상납금 가운데 상당수가 박 전 대통령의 의상실 운영비나 차명폰 사용료. 비선진료 치료비 등으로 전용된 사실이 검찰수사로 드러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돌아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박지원 의원의 2014년 10월 '경고'를 뼈아프게 받아들였다면 사건은 이 지경까지 일파만파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취임초부터 이헌수 전 실장이 국정원에서 특활비 상납금 관리를 했기때문에 중간에 권력암투설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사표를 수리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배신의 가능성을 가장 우려했다는 것이다.
전직 검찰관계자는 "국정원 기조실장은 인사.예산권을 쥐고 있기때문에 일반적으로
중간에 교체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특활비를 지속적으로 원활하게 상납받기 위해 4년내내 교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에게 당시 폭로 배경을 물었다. 박 의원은 "벌써 3년이 넘어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며 말을 아꼈다.
박 의원은 그러나 "국정원이나 권력 다툼은 내부에서 나온다. 권력싸움이 있기 때문에 상대가 있고 자기들간 싸움의 결과로 내부 속살이 터져 나온다"고 말했다.
물론 박근혜 정부에 대한 '고언'을 박지원 의원만 한 건 아니다. 무도하기 짝이 없는 국가 최고지도자의 특활비 사적 유용을 절망스럽게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반추해 볼 뿐이다. {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