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집행유예 선고로 서울고등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가 자기모순에 빠진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 부회장이 자신의 지배력 행사를 돕는 미래전략실을 통해 각 계열사를 지배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승계작업의 증거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석방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부회장에 대해 "이건희 이후의 승계자로서의 지위에 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통해 사실상 삼성전자의 자금 관리를 포함한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미전실에 대해서는 "각 계열사를 통할(統轄‧모두 거느려 다스림)하면서 그 운영을 지원‧조정하는 조직", "대주주(또는 총수)의 경영지배권 행사를 지원하는 조직으로써 미전실 소속 임직원들이 이재용을 이건희의 후계자로 인정하면서 개별 현안들에 관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명시했다.
즉, 삼성그룹 승계자의 지위를 가진 이 부회장은 경영 지배권 행사를 지원하는 미전실을 통해 각 계열사를 다스린 인물이다.
앞서 최지성 전 미전실장은 1심에서 이 부회장에 대해 "현실적으로 후계자로 삼성 경영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다", "제가 봐서 후계자 수업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과 주요 현안에 대해 의견 들어줄 내용이 있으면 팀장들로 하여금 보고하게 했다"고 증언했다.
결국 이 부회장은 경영승계를 완성하기 위해 미전실의 도움을 받아 계열사를 움직인 인물이라는 평가가 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삼성그룹의 포괄적 현안으로써 승계작업은 증거가 없다는 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승계작업을 이어가는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의 현안이 승계작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삼성합병과 이에 따른 신규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처분 최소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이 성공할 경우 이재용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었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 사정은 개별 현안들의 진행과정에 따른 결과를 놓고 평가할 때 그런 효과가 확인된다는 것이고, 그 결과는 개별 현안들의 진행에 따른 여러 효과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또 "각 현안들이 계열사 경영상 필요 또는 합목적성이 있었고, 이 부회장에게 미치는 효과의 크기도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합병 등 현안이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한편, 이 판단은 결과론에 불과하다고 모순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게다가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 정도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며 자신들의 판단을 확신하지 못한 채 선고한 모양새도 보였다.
그러면서 승계작업은 증거가 없기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청탁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이 부회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승계작업에 대해 '묵시적 청탁'을 인정한 1심을 깨고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강요에 따라 수동적으로 뇌물을 제공했다고 결정한 배경이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이 국정농단의 부역자에서 피해자로 '신분세탁'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검은 "청와대와 정부부처, 민간 시장에서 모두 인정하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및 승계작업의 존재를 항소심 재판부만 별다른 이유 없이 불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의 불법적인 지시에 따라 국민연금공단의 삼성합병 찬성으로 이 부회장이 막대한 이익을 취했음에도 국정농단 세력의 피해자인 것처럼 본질을 오도했다"고 꼬집었다.
검찰 역시 "법리상으로나 상식상으로나 대단히 잘못된 판결로써 반드시 시정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백번 양보해 36억원 횡령 갖고도 절대 집행유예가 나올 사안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