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자료사진=박종민 기자)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 강제 집행 움직임에 대해 '국제법적 대응 검토' 지시를 내리며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최근 지난달 20일 발생한 한일 군 당국 레이더 갈등도 국제사회에 여론전을 피고 있어 경색된 한일관계는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다.
◇아베 "강제징용 배상 끝난 문제…국제법 조치 검토"
아베 총리는 6일 NHK 방송 일요토론에 출연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에 대해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났다"며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아베 총리의 이러한 발언은 지난해 10월 30일 대법원의 "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결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또 아베 총리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압류를 향한 움직임은 매우 유감"이라며 "정부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95) 등 4명을 대리한 변호인단은 일본 신일철주금이 협의에 응하지 않자 지난달 31일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에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설립한 합작회사 'PNR'의 한국 자산을 압류해달라는 강제집행을 신청했다.
여기에 지난해 11월 미쓰비시중공업과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리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유족들도 다음달 말까지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3.1절에 미쓰비시의 국내 재산에 대한 압류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대법원이 일제에 강제징용 피해를 당한 4명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 30일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서울 대법원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아베 총리는 "국제법에 근거해 의연한 대응을 취하기 위해 구체적 조치에 대한 검토를 관계 부처에 지시했다"고 향후 대응책을 설명했다.
구체적 조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상의 양국 간 중재위원회 구성을 통한 해결과 더 나아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일본 언론들은 "양국 간 협의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日, 국제사회 여론전 유리하다는 판단 내린 듯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에 여론전을 펴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만약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할 경우, 65년 청구권 체제 자체가 흔들리고 북한이나 중국, 동남아 등지로 배상문제가 파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강경하게 나서는 것이다.
또 우리 정부가 대법원의 배상판결 이후 두달이 넘도록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우리를 압박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일단 공세를 가한 뒤 우리 정부의 해결 방안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배상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우리가 일본의 제소에 응하지 않을 경우 재판은 열리지 못하게 되는데, 그러한 경우 일본은 한일 청구권 협정을 포함해 우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프레임을 잡으면 불리할 게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실제로 국제사법재판소로 간다면 일본이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본은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전제 하에 국가 총동원령은 정상적인 행정조치라는 주장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또 강경 대응 기조를 통해 국내 여론도 유리하게 조성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고심에 빠져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아베 총리의 인터뷰와 관련해 "정부 내에서 관련 문제들을 다각도로 심도있게 논의해 왔으며,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관계부처간 협의 및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대응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한일 간 레이더 갈등도 일본이 강경한 여론전을 펴면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일 양 군사 당국이 각각 현장 동영상을 공개한 가운데, 국방부가 공개한 반박 영상의 달린 5만여 건의 댓글에는 양국 국민의 감정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국방부가 4일 한일 '레이더 갈등' 관련 일본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사진=국방부 영상 캡쳐)
결국 강제징용 배상문제와 초계기 문제로 불거진 한일관계의 경색은 당분간 쉽사리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역사와 군사 문제라는 민감하고도 중요한 사안이어서 일본이 국내 정치용으로 적극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양기호 교수는 "일본 정부는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대책을 내라고 재촉을 하고 있는 상황이며, 섣불리 대응하다가는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사태로 갈등이 뜨거워져 자칫 최악으로 번질 수 있으므로 양국 여론을 살펴 신중하게 대응하는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