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갈무리
사회 유력인사들에 대한 성접대를 강요받았다고 폭로한 문건을 남기고 2009년 3월 7일 스스로 세상을 등진 신인배우 고 장자연씨. 고인이 죽음을 불과 5일 앞둔 그해 3월 2일, 당시 소속사 관계자와 통화한 내용을 녹음한 육성 파일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27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당시 장자연씨 심경이 담긴 육성 파일이 공개됐다.
"나는 잘못한 거 없어, 회사에. 회사에서 하라는 거 그대로 충실히 다 하고 있잖나. 나는 가만히 있었어. 난 어떤 움직임도 없어. 난 누구도, 백도 없고 지금 아무것도 없어." - 고 장자연씨 육성파일 중에서
이는 당시 장씨와 소속사 사이에 어떤 갈등이 시작됐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이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 거 아니에요, 누나가'라는 통화 상대의 말에 장씨는 "내가 어떻게, 무슨 힘이 있어서 어떻게 풀까?"라고 답한다.
장씨는 "이제 더 이상 나는 정말 약으로도 해결이 안 돼. 정신병 약으로도 해결이 안 돼, 이제. 죽이려면 죽이라고 해. 나는 미련도 없어요"라고 토로하며 아래와 같이 말을 잇는다.
"대표님이 지금 나한테 어떤 짓을 먼저 시작했어. 김00 사장님은 이미 엄청난 말들과 엄청난 입을 가지고 장난을 치셨어, 지금. 그 사람은 굉장히 발이 넓고 힘 센 사람이야. 김 사장도 가만히 소리 못 지르고 '아, 예' 이런 사람이란 말이야. 그 00한테 벌써 전화를 해서 난리를 쳤어. 내가 무슨 늙은이랑 만났다는 둥 어? 뭐 어쨌다는 둥 저쨌다는 둥… 어?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면서 그쪽에서 연락이 와서 나 죽여버리겠대."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방송을 통해 "검찰이 작성한 불기소 결정문에는 문건에 언급된 조선일보 사주 일가 외에도 수많은 사회 유력인사들이 등장한다"며 "모두 (당시 장자연 소속사) 김 대표의 통화기록이나 술값 결제 내역,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해 장자연씨와의 술자리 참석 여부가 확인된 인사들"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눠지는데 앞서 보신 언론사 사주 일가와 드라마 감독, 그리고 금융인들"이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놓고 보니 조금 이상하다. 드라마 감독과의 술자리도 매우 부적절해 보이기도 하나, 신인배우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신인배우 홍보를 위해서 일선 기자도 아닌 언론사주 일가와 식사나 술자리를 함께하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히 금융인들은 신인배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캐스팅이나 홍보와도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제기한 중요한 의문이 하나 있다. "김 대표는 이런 사람들과의 술자리에 왜 신인배우인 장자연씨를 데리고 나간 것일까."
당시 김 대표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국내 광고 에이전트로 서른살 젊은 나이에 화려하게 이름을 알리고, 당대 최고 스타들을 거느리며 전성기를 누렸다. 제작진은 "2007년 10월 그가 무명배우였던 장자연씨와 계약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장자연씨 지인 역시 이날 방송을 통해 "처음에 (장자연씨가) '나 어디 회사. 누구네 있는 회사에 들어갈 것 같아' 그래서 '언니 거기 회사 어떻게 들어가? 찍은 것(작품)도 아무 것도 없는데 (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한 연예계 관계자도 "제가 볼 때 여자 키가 165(㎝) 이상 되고, 또 체격이 너무 커서 나중에 역할에 한정이 되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미래를 보고 계약을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당시에도 했었다"고 의문을 나타냈다.
제작진은 "신인배우 한 명을 키우기 위해 기획사가 투자하는 돈은 통상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가 넘는다고 한다"며 "하지만 장자연씨는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기는커녕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고인이 남긴 문건에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촬영할 때는 진행비를 저에게 부담시켰고 이것도 모자라 매니저 월급 및 스타일리스트비, 미용실비 모든 것을 제 자비로 충당했습니다'라고 기록돼 있다.
또 다른 장자연씨 지인은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연기자나 가수들한테 스타일리스트비나 그런 진행비를 대라고 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없었다"며 "그런데 걔(장자연씨)는 '그렇게 한다'고 하길래 '무슨 회사가 그래?'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