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12년 7월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으로 소환조사를 받으러 가던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정두언 전 의원(3선·서울 서대문을)이 16일 세상을 등졌다. 정 전 의원은 한때 보수 진영의 집권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 공적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고, 마이너였던 그대로 정치와 인생을 마감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일관됐던 쓴 소리가 그의 정치적 궤적의 일관된 기록으로서 마지막 행보까지 함께 하게 됐다.
정치권이 기록하는 정두언의 정치 궤적에서 중요했던 한 순간은 18대 국회를 앞둔 총선 공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이명박(MB) 정권 1년차, 그는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SD) 전 의원에 대한 '불출마'를 요구했다가, 속된 말로 찍혔다. 17대 초선 때의 일이다.
MB의 책사로서 개국공신이었지만, 이후 정치 이력은 내리막으로 치달았다. 생전의 정 전 의원을 비롯해 측근들로부터의 일관되게 제기된 증언은 대통령의 최측근 인척을 견제했던 결과 돌이킬 수 없이 권력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19대 공천을 받았다. 친이계의 주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공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은 그가 보수정당에겐 불리한 서울에 지역구를 둔 의원으로선 보기 드물게 개인기를 갖춘 의원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MB 정권의 칼바람을 빗겨갈 수는 없었다. 결국 2012년 임석 전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대 국회 후반기에선 국회 국방위원장을 역임했다. 그가 없었던 전반기, 국방위원장 당내 경선했던 유승민 의원(현 바른미래당)은 "내 친구 정두언이 지금 이 자리에 없다"는 말을 시작으로 출마의 변을 얘기하기도 했다.
20대 총선이 있었던 2016년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전후 새누리당에서 탈당했다. 이후 현재까지 당적 없이 보수 진영에서 논객으로 활동했지만, 결국 당적 없이 야인의 신분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정치권 인사들은 20대 국회 들어서 여야 정치권을 가감 없이 비판했던 모습을 마지막 기억으로 간직하게 됐다. 이 즈음을 전후에 이혼과 재혼을 하는 등 개인사도 부침을 겪었다.
원외 인사로서 식당을 경영했던 그의 생전 행적이 여의도에서 기억되는 마지막 모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