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12월, 남북경협인, 종교,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정부의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지난 22일 오전 10시 30분 정부서울청사 앞에는 개성공단기업협회 등 249개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5.24 조치 해제 및 남북협력 전면 재개를 촉구하는 각계 공동기자회견'이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과감한 결단이 있으면 행정조치에 불과한 5.24 조치는 지금이라도 해제할 수 있다"며, "남북관계의 새로운 진전을 위해 5.24 조치의 즉각 해제와 남북 협력의 전면적 재개를 선언할 것"을 촉구했다.
같은 시각 정부서울청사 3층 합동 브리핑실에서는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이 이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했다. 여상기 대변인은 "현 단계에서는 5·24 조치 관련 발표에 이어 또 다르게 발표할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현 시점에서 5·24 조치의 공식 해제를 선언하기는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 통일부 "5.24 실효 상실" 공식화로 사실상 사문화정부의 단독 대북제재인 5.24 조치가 오늘(24일)로 시행 10년을 맞으면서, '공식 해제'냐 '명목상 유지'냐는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20일 "5·24 조치의 실효성이 상당부분 상실됐다"며, "정부는 5.24 조치가 남북교류협력추진에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5.24 조치에 대해 '실효성이 상실됐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효성이 없다는 것은 결국 유명무실해졌다는 것, 사실상 사문화됐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각에서 통일부의 입장 발표를 5.24 조치의 폐기선언으로 해석한 이유이기도 하다.
통일부가 우리 정부의 단독 대북제재방안인 5.24 조치에 대해 '실효성 상실'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은 역대 정부에서 이 조치와 배치되는 예외적 적용을 계속 해왔기 때문이다.
보수정부라고 해도 남북관계의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던 만큼 5.24 조치를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5·24 조치를 발표한 당사자인 이명박 정부가 지난 2011년 9월 7대 종단 대표들의 방북을 계기로 비정치·종교·문화계의 방북을 선별적으로 허용했고, 박근혜 정부도 5.24 조치의 예외로 지난 2013년 11월 남·북·러 물류 협력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게다가 유엔과 미국이 2016년부터 북한에 대해 본격적인 경제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정부의 단독제재방안인 5.24 조치는 의미를 상실하게 됐다.
◇ 천안함 북한 사과없이 공식 폐기 조치는 정치적 부담
2015년 4월, 한민구 당시 국방장관과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이 10일 오후 평택2함대에서 천안함 헌화 및 참배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5.24 조치가 유명무실화되어 결국 '실효성 상실'이라는 정부의 공식 평가가 내려지기에 이르렀으나, 통일부는 현 시점에서 이 조치의 공식 폐기 선언을 하는 것에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 21일 5.24 조치의 폐기를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실효성 상실이라는 통일부 입장 발표와) 그것(폐기 선언)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며 명확한 답변을 피했다.
5.24 조치 10년을 앞두고 정부 내에서도 '해제선언'과 '명목유지' 입장 간에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 시점에서 5.24 조치 해제 선언을 할 경우 가장 우려된 것은 '정치적 논란'으로 보인다.
5.24 조치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정부의 대응 조치였다.
따라서 천안함 폭침에 대한 북한의 사실 인정과 사과가 없는 상황에서 그것의 대응 조치라고 할 수 있는 5.24 조치를 공식 폐기할 경우 천안함 유족들의 반발은 물론 정치권의 소모적 논쟁도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유엔과 미국의 포괄적 대북제재가 시행되는 상황에서 5.24 조치 폐기 선언을 한다고 해도 실익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쳐 시행된 6차례의 유엔제재가 5.24 조치보다 훨씬 포괄적이기 때문에, 5.24 조치 폐기 선언을 한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속도를 내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통일부는 5.24 조치의 폐기선언 보다는 '실효성 상실'라는 정부 평가를 공식 발표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관측된다.
해제 선언에 따른 소모적 논란은 피하되, 동시에 '실효성 상실'을 공식화함으로서 남북협력사업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신호를 북한에 보내자는 것이다. '실효성 상실'을 공식화한 만큼 이 조치를 향후 남북협력사업에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시민단체들, 5.24 해제 촉구 서한 청와대 전달물론 반론도 있다.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5.24 조치 해제 및 남북협력 전면 재개를 촉구하는 각계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해 '실효성 상실'이라는 통일부의 발표에 대해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정부가 유명무실해진 5.24 조치의 해제를 공식 선언함으로써 남북화해협력을 향한 정부의 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릴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5.24 조치 해제를 요구한 249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은 관련 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한 만큼 청와대의 입장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15년 5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통일대교 검문소에서 군인들이 북한을 향하는 대북지원사업자 재단법인 에이스경암 측의 비료 15톤과 농자재 등을 실은 트럭 22대에 대한 출입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정부가 민간단체의 대북 비료지원을 승인한 것은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5.24 대북 제재조치를 취한 이후 5년 만이다.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