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10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로 민선 출범 이후 최초로 세번 연속 서울시장을 지냈다.
지난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논란으로 사퇴하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돼 정계에 첫 발을 딛었다.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후보 양보는 당시 진보진영에 오랫동안 회자됐다.
정치권에 들어온 박 시장은 3선 서울시장을 지내며 진보 진영 대선 주자로 꾸준히 거론됐다.
대통령 국정운영의 축소판으로 불리는 서울시장을 10년간 경험한 박 시장은 올해 4·15 총선에서 '박원순계"로 불리는 인사 10여명이 당선되면서 차기 대권 후보로 다시 이름을 올렸다.
박 시장은 최근까지 대선 출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기본소득과 부동산 정책 등 국정 전반에 대한 이슈를 주도했다.
박 시장은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다.
하지만 유신체제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고(故) 김상진 열사 추모식에 참석하면서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명령 9호 위반으로 1학년 때 제적을 당했다.
박 시장은 이후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의 런던 정치경제대학(LSE)에서 국제법을 수학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박 시장은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구지검에서 초임검사로 일한 박 시장은 사형 집행 장면을 참관하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6개월만에 사표를 냈다.
이후 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맡으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박 시장은 1995년부터 시민단체 영역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참여연대'에서 사무처장을 지내는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펼쳤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는 총선시민연대 상임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고 부패 정치인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2001년에는 아름다운재단·아름다운가게 등의 시민단체를 설립했다.
기부받은 물건을 다시 가공해 저소득층에게 저렴하게 팔고 그 수익을 기부하면서 국내 기부문화 확산을 주도했다.
박 시장은 2017년 1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문재인 당시 후보에 대한 민주당 내 전폭적인 지지로 고전하다가 20여일 만에 후보직을 철회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2018년 12일 오전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6·13 지방선거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공식 출마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하지만 2018년에는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제치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지지율은 떨어져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지난 6일 민선 7기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대선은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안 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또 "다음에 대선 얘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해 차기 대선에 대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출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역대 최장수 서울시장인 동시에 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되던 박 시장은 최근 여비서 성추행 사건으로 경찰에 고소된 뒤 극단적 선택으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