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를 마치고 김재하 비상대책위원장과 기뻐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갑작스러운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았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이 약 7년 만에 합법 노조로 지위를 회복할 길이 열렸다. 다만 대법원은 법리적인 이유로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은 위법이라고 판단하면서도, 해고 노동자의 노동조합 가입 문제 등 본질적인 쟁점에 대해선 확답을 내리지 않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일 전교조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전교조) 패소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했다.
과거 전교조 측을 대리했던 김선수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김명수 대법원장 포함) 중 8명의 다수의견이며, 별개의견을 낸 2명도 정부의 법외노조 처분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압도적인 판결이 나왔다. 이기택·이동원 대법관만 원심 판단대로 법외노조 통보 처분이 옳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다수의견의 요지는 법외노조 통보의 근거가 된 고용노동부 시행령이 '무효'라는 것이다. 현 노동조합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면서, 그 시행령에서는 이러한 경우 '시정을 요구하되, 시정되지 않는 경우 노동조합법에 의한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원노조법과 그 시행령에서도 이 규정이 그대로 적용된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를 마치고 법정을 나와 만세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고용노동부는 전교조가 해직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허용하는 규약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해직 교원 9명이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전교조가 시정하지 않자 2013년 10월 법외노조 통보를 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고용노동부의 처리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법외노조 통보와 관련해서는 법률에서 아무런 위임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시행령이 이를 넘어선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헌법상 보장된 권리와 자유를 제한할 때는 국회가 법률로 스스로 규율해야 하며 시행령은 모법인 법률에 의해 위임받은 사항을 집행하는 데 필요한 세부사항만을 규정할 수 있다"며 "그러나 이 사건의 시행령은 명시적·구체적 위임이 없음에도 노동3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해 무효"라고 지적했다.
법외노조가 되면 당장 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될 뿐 아니라 노동쟁의 조정,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등 노조 활동에서 심각한 지장을 받게 된다. 이처럼 법외노조 통보가 단순히 노동조합법에 의한 보호에서 벗어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노동3권을 실질적으로 제약한다는 점에서 대법원은 법률상 분명한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봤다.
또 문제의 시행령이 1987년 국회에서 이미 폐지시킨 '노동조합 해산명령 제도'와 사실상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이미 적법하게 설립돼 활동 중인 노동조합을 행정관청이 임의로 해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근로자의 단결권과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없어진 폐지된 조항이다.
그러나 폐지 후 불과 5개월 만에 정부는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법외노조 통보 제도'를 도입했다. 대법원은 "(해산명령 제도와 비교하면) 법외노조 통보 제도는 오히려 노동위원회의 의결 절차도 없어 행정관청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가 확대됐다"며 "국민의 대표인 입법자의 결단에 따라 폐지된 제도를 행정부가 법률상 근거나 위임 없이 행정입법으로 부활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시행령의 위헌성을 판단할 때 이러한 연혁도 살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다수의견은 해직 근로자가 노동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에서는 명시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결격 사유가 있는 노동조합에 대한 규율 문제 등도 사회적 공론화와 입법적·정책적 해결이 선행돼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명시적인 표현은 없지만 사실상 해직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 유지도 큰 틀에서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며 "다만 그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항은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별개의견을 낸 김재형 대법관은 "이 사건의 핵심은 전교조가 법상 노동조합인지 아닌지 여부"라며 다수의견의 맹점을 지적했다. 헌법은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며 노동조합법은 이를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존재함에도 '비근로자 가입 시 노조가 아니라고 본다'는 법률 규정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김 대법관은 "노조와 아무런 관련 없는 제3자의 조합원 가입을 허용할 수는 없고 한때 근로자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며 "그러나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해고된 근로자의 조합원 자격을 부정하고 이를 이유로 노조의 법적 지위까지 박탈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의 당부를 따지기에 앞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판단한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반면 안철상 대법관은 "전교조가 법을 위반한 것은 명백하고 시정명령도 거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세계 보편적 기준은 해직 교원의 교원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것으로 정립됐다는 점에서 (법외노조 통보는) 위법사항에 비해 과도해서 위법하다"고 밝혔다.
1·2심의 판단이 완전히 뒤집힌 것과 관련해 전교조 관계자는 "원심도 충분한 심리를 했겠지만 다소 정치적이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며 "정부의 즉각적인 사과와 시정, 피해회복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은 2013년 10월 박근혜 정부가 조합원 6만명 규모인 전교조에 9명의 해직교원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노조 아님' 통보를 했을 때부터 정치적 탄압이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전교조는 법외노조 통보 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해 1·2심에서 승소하며 합법 노조 자격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5년 양승태 대법원은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서도 고용노동부의 재항고를 받아주면서 전교조를 다시 압박했다. 해당 사건을 앞두고 2014년 12월 법원행정처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문건을 작성하며 BH(청와대)의 분위기를 살피기도 했다. 최근 '사법농단' 관련 재판에서도 대표적인 피해 사례로 언급되는 사건이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위원장이 3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 선고를 마치고 법정을 나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법외노조화가 정치적 반대세력에 의한 조직적 국가폭력이었고 기본권 유린이었음이 확인됐다"며 "이 판결에 문재인 정부가 답할 때"라고 말했다.
법외노조 통보 처분은 고용노동부가 직권으로 취소할 수 있음에도 그간 정부는 사법부 판단을 먼저 받겠다고 보류해 왔다. 판결 직후 고용노동부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처분을 취소하는 절차를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반면 보수성향 학부모단체인 전국학부모단체연합(전학연)은 이날 선고에 앞서 전교조 합법화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보수 성향의 교원단체인 "(법원이) 같은 사안을 놓고 다른 선고를 내려 국민 법감정상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법리적 판단보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과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고려한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